‘띠부띠부씰’ 혹은 ‘띠부씰’이라는 단어를 처음 듣고는 무슨 말인가 했다. ‘꼰대’ 여부를 가르는 테스트용 신조어인가 싶었다. 뜻을 알고 나니 흥미가 더했다. ‘떼었다 붙였다’는 의미를 요즘 구어체로 줄인 말인데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를 통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씰(seal)’은 크리스마스실에 쓰인 말과 같은 뜻이다. 강원도 고성의 일명 김일성 별장이라고 불리는 해안가의 서양식 석조 건물의 원주인인 셔우드 홀이 한국 크리스마스실의 원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띠부씰’은 100여 년 전의 외래어와 요즘 신조어를 합성한 특이한 말인 셈이다.
띠부씰 열풍은 포켓몬 빵에서 시작됐다. 포켓몬이라는 게임 속 캐릭터가 그려진 스티커가 동봉된 빵이 편의점에서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화제가 됐다. 제조사인 SPC는 주문이 밀려 공장 가동에 힘에 부칠 정도라고 한다. 띠부씰은 tvN의 인기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에도 등장했다. 띠부씰이 유행하던 1998년을 배경으로 전개되는 드라마 속 여자 주인공 ‘나희도’가 빵을 먹다가 귀여운 캐릭터 스티커(띠부실)에 애착을 갖고 수집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이후 ‘희도빵’이란 애칭을 얻게 된 빵 제품의 판매량이 급증했다고 한다. 해당 빵은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프리미엄 베이커리 PB(자체 브랜드)인 ‘브렌다움’이다. 실제로 해당 상품이 전파를 탄 후 일주일간(3월7~13일) 매출이 전주 대비 3배가량 늘어났다. 띠부씰이 들어있는 브레다움 세 품목이 세븐일레븐 전체 빵 매출 순위에서도 포켓몬 빵에 이어 2~4위를 차지했다.
띠부씰의 인기는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소비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상품의 가치라는 측면에서 ‘희도빵’의 본질은 배고픔 충족이다. 그런데 요즘의 소비자들은 제품의 본원적 가치보다 오히려 동봉된 스티커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희귀 스티커는 당근마켓 같은 중고거래 플랫폼에서 한 장에 2만~5만원에 거래된다고 하니, 공급자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교환가치를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이 같은 현상은 한정판 나이키 운동화에 대한 수집 욕구와도 비슷하다. 전 세계에 몇 족 안 되는 나이키 제품은 외부 환경에 발을 보호한다는 신발의 본원적 가치가 아니라 나이키 수집광들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교환 품목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다. 롤렉스는 그나마 영원토록 불변하는 기계적 시간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교한 기술이라도 있으니 화폐에 버금가는 롤렉스의 교환 가치를 인정할 수 있지만, 나이키 운동화, 더 나아가서 띠부씰로 생각의 범위를 넓히면 ‘배꼽 소비’의 이면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비자들은 왜 띠부씰에 열광할까. ‘희도빵’이 등장하는 시대가 힌트가 될 수 있겠다. 1998년, 외환위기가 휩쓸고 지나간 한국은 미래에 대한 희망보다는 현재의 행복이 중요할 수밖에 없는 때였다. 당시 초등학생들은 국진이빵, 포켓몬 빵의 띠부씰(물론, 그 시절에는 이런 용어를 쓰지는 않았다)에 열광했다. 그러니까, 요즘의 띠부실 유행은 20여 년 전의 추억을 회상하는 ‘키덜트’들의 신종 놀이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다만, MZ세대의 끝자락에 있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회상 놀이라고 치부하기엔 확장성이 꽤 크다. 10대와 20대들까지 나서서 스티커를 수집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 같다. 설득력 있는 설명 중 하나는 게임 문화다. 요즘의 1020 세대들은 게임을 빼놓고는 그들의 일상을 설명하기 힘들다. ‘세계관’이라는 말이 게임 속 스토리를 지칭하는 말로 바뀌었을 정도다. 남들이 갖지 않은 희소성 혹은 한정판에 집착하는 세대들에게 빵에 동봉된 스티커는 명품, 리폼 운동화, NFT 등 비교적 고가의 물품에 비해 쉽게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대상인 셈이다. 거기에 편의점 등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까지 더해지면서 전례없는 띠부실 열풍이 불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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