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발전하면서 규모가 커지면 대체로 빚도 늘어난다. 단지 빚 증가가 무서워 경제 성장에 주저할 이유도 없고, 오로지 늘어나는 부채만 볼 필요는 없는 것이다. ‘자산= 부채+ 자본’이라는 것에 비쳐 봐도 부채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경원시 할 이유는 없다. 경제의 여러 아젠다가 그렇듯이 부채도 다면성, 최소한 이중성을 갖고 있다. 그런 특성 때문에 논설실에서 사설을 다룰 때도 부채 문제에 관해서는 좀 더 신중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부채 문제를 가볍게 본다는 의미는 아니다. 경제 상황이 급변할 때의 금리 인상 혹은 인하에 대해 딱 부러진 논평 내기가 어려운 것과 비슷하다.
그럼에도 부채 문제는 중요한 경제 이슈다. 경제 규모에 맞춰 부채가 늘어나는 게 자연스럽다고 할 때에도 증가속도, 단기 급등은 분명 문제가 된다. 주의해서 보면 근래 과속 경고가 은근히 많다. 소득과 자산에 따른 특정 계층, 특정 연령대, 특정 직업 및 산업군(群)에서의 편중된 증가도 문제다. 절대 규모에 대해서는 늘 논란이 분분하지만, 자산과의 대비로도 같은 맥락에서 위험성을 잴 수 있다.
가계 기업 정부 등 전통적 경제 3 주체로 볼 때 최근 몇 년 동안은 급증한 국가 채무가 큰 관심사였다. 가계나 기업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간섭이 문제가 될 정도로 엄격한 대출한도가 적용돼 결과적으로 대출의 건전성이 유지됐다고 볼 수 있다. 젊은 세대의 ‘영끌’ 등으로 상징되는 가계부문이 특히 그렇다. 집값대책의 일환으로 LTV DTI가 과도해진 것이 역설적으로 가계 빚 증가를 억눌러준 것이다.
나라 빚은 범람하는 포퓰리즘 속에 예산지출의 위험선이 무너지면서 급증했으나 직접 규제하고 통제할 수단이 마땅찮다. 그 결과 단기간에 급증했다. 위험한 쏠림은 저금리가 끝나가면서 무섭게 경제를 압박하고 있다. 연일 계속되는 인플레이션 경고 속에 오르는 금리는 더 들썩거리고 있으니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부채공화국’이라는 비판을 받는 한국의 빚은 컨트롤 가능할까.
2030세대의 부채는 458조7000억원(2021년 6월말)으로 전체의 27%를 차지한다. 앞서 통계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이 공동 조사한 ‘2021년 가계금융복지 조사’를 보면 2030 세대 가구조의 부채는 평균 9986만원(2021년 3월말 기준)으로 1년 전에 비해 9.5% 늘었다. 30대의 부채 증가율은 11%에 달했다.
가계 부채의 양극화 문제도 있다. 전체 가계 빚이 통계가 나올 때마다 ‘사상 최대’라고 하지만, 국가적 금융위기가 오지 않는 한 가계의 금융자산도 성장에 따라 늘어나고는 있다. 전체로 보면 그렇다. 문제는 역시 증가 속도이고, 더 실질적 문제는 금융자산이 없는 취약계층의 부채가 늘어나는 것이다. 고용 증가를 통한 선순환 발전이 없이는 계속 문제될 것이다.
최근 네 번째 획일적인 유예 조치가 내려진 소상공인과 중소기업들의 이른바 ‘코로나 대출’이 그런 사례다. 앞서 세 차례나 반복됐던 만기연장 및 상환유예는 원래 ‘2022년 3월말까지’라는 시한을 박은 것이었지만, 대선 직전에 금융위원회가 시중은행장들을 소집해 또 한 번 같은 조치를 더 했다. 지난해 9월 3차 연장 때 204조원이었던 대출 잔액이 다소 줄어든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또한 폭탄돌리기는 아닐지 걱정이다. 글로벌 경제 상황을 보면 대기업부채도 어떻게 부담으로 작용할지, 이 문제는 채권단으로서 은행들이 알아서 제대로 판단하는 지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가계 빚, 기업 빚, 나라 빚 어느 것 하나 쉬운 게 없다. 저금리 때는 모두가 견딜 만했다. 코로나 2년간은 특별한 위험 기간이라며 대출의 관리와 회수 문제도 의도적으로 피했다. 장기간 초저금리 때는 국채 발행에도 문제가 없었으니 나라 빚도 쉽게 늘었다. 하지만 이제 금리는 오르기 시작했고, 해외의 신용평가사들은 지켜 볼 것이다. 그래도 곳곳에서 돈 더 쓰자는 얘기뿐이다. 윤석열 당선자 쪽에서도 공약 이행이라며 50조원 2차 추경을 주장한다. 부채공화국의 세 부문 동반 과속 증가, 뒷감당이 될까. 빚내 쓴 뒤가 두렵지 아니한가.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