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보다 더"…체면에 죽고 사는 중국인들 [더 머니이스트-조평규의 중국 본색]

입력 2022-03-18 06:35   수정 2022-03-18 11:29


중국인들은 체면(面子)을 목숨만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체면은 중국 전통 문화에 뿌리를 둔 사회 심리적 구조입니다. 시간과 장소 그리고 상황에 따라 존엄, 명예, 권위, 인맥 등 다양한 모습을 띱니다. 중국인의 체면은 한 사람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나타내는 윤리 정서의 두드러진 특징입니다.

중국에서는 체면을 손상 당하게 되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종종 나옵니다. 학교에서 아이의 낮은 성적이나 잘못된 행동은 부모의 체면이 손상되는 것이고, 학생이 명문대학에 합격하는 것은 학교의 체면을 세워주는 일입니다.

맹자(孟子)에도 먹을 것이 없어 초상집에서 구걸하다시피 얻어먹고는, 집에 와서 아내에게 부자가 술과 음식을 사주었다고 허풍을 떠는 장면이 나옵니다. 도시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도 춘절(春節)이 되어 고향에 가서는 고급 양복을 입거나 고급승용차를 타고 자기를 과시합니다. 식당에서 계산을 서로 자기가 하겠다고 다투는 것도 진심인 경우보다 체면을 다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중국인의 체면은 인간의 긍지나 자존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수천년 농경문화 환경 속 다른 사람의 평가를 지나치게 의식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성공해서 고향에 돌아가지 않는 것은,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는 속담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서방 사회가 사람을 평가할 때 개인 간의 비교보다는 더 나은 세계를 위한 활동, 인권의 신장,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돕는 일, 인류 보편의 가치에 열정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합니다. 반면 중국은 명문대학 입학이나 고급외제차를 사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높은 관직에 오르는 것에 열광하고 체면이 서는 일이라고 여깁니다.

서방 세계에서는 중고품을 거리에서 사고파는 일은 돈이 있든 없든 누구나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중국인들은 가짜의 신품을 사는 한이 있어도 남이 쓰던 물건은 사지 않습니다. 중고품을 산다는 것은 자신의 체면이 깎이는 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인은 속옷은 아무리 더러워도 신경 쓰지 않지만, 겉옷은 체면과 관련 있어 상대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중국회사에서 공개적으로 잘못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행위는 피해야 합니다. 잘못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상대는 절대적으로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원한을 사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공개적으로 체면을 상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럴 경우 조용히 불러 체면을 잃지 않도록 둘만이 있는 장소에서 잘못을 지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중국인은 사람이 없는 공간에서 상대방이 나의 체면을 깎아도, 자신의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상대의 체면을 살려 주어도 체면이 섰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체면을 살려주기 위해서는 칭찬은 공개적으로, 비판은 개별적으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중국에서 체면은 빌려 쓸 수 있습니다. 높은 체면을 가진 사람과 친하게 지내거나, 같이 식사를 하고 사진을 찍으면 자기의 체면이 높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체면의 배후에는 이익이라는 개념이 존재합니다.

어떤 사람이 권력이나 재력을 가지고 있으면 아랫사람들이 복종하고 체면을 세워 줍니다. 자기들의 이익이 그에게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영향력 있는 자원을 상실한 사람에게는 체면도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따르지 않습니다.

중국의 체면 문화는 중국인 사고 체계에 오랫동안 체화된 문화 현상입니다.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인정해 주면 됩니다. 특히 중국 정부의 최고지도부는 체면을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체면이 손상되면 전쟁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외교적으로 체면을 세워주는 여유를 보이면 실리적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유교 문화는 상명하복의 질서를 강조합니다. 직위가 높은 사람의 체면은 낮은 사람보다 더 크고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행사나 만찬에서 가장 먼저 연설하거나 상석에 앉는 사람은 참석자 중에서 가장 고위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고위직은 체면을 잃었다고 생각하고 금방 자리를 뜹니다. 중국의 체면 문화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체면은 겉과 속이 같아야 좋은 평가를 받고 오래갑니다. 현대는 체면보다 겸손한 행동이 더 높은 평가를 받는 시대입니다. 중국 사회에서도 전통적인 개념의 체면은 급속히 쇠퇴하고 있습니다. 겉보다 내실 있는 사람이 높은 평가를 받는 방향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조평규 경영학박사

"외부 필진의 기고 내용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독자 문의 : the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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