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직 한계연령은 35세'라는 일본 노동계의 오랜 상식이 파괴되고 있다. 스타트업(신흥 벤처기업)의 급성장으로 대기업과 연봉 격차가 줄어든 한편 경험 많은 베테랑 임직원을 찾는 수요가 늘면서 지난해 이직자의 절반이 40대 이상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구직사이트 'AMBI'에 따르면 2021년 4~9월 대기업에서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임직원은 2018년 4~9월보다 7.1배 증가했다. 같은 기간 3.8배였던 전체 이직자수 증가율의 2배에 달한다. 전체 이직자수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1.4%로 3년 만에 3배 증가했다.
대학 졸업자 일괄채용과 종신고용제도의 전통이 뿌리깊은 일본에서 이처럼 이직이 증가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2020년 기준 일본 근로자의 평균 근속연수는 12.5년으로 미국의 4.1년, 영국의 8.6년보다 훨씬 길다.
특히 직장에 대한 소속의식이 강했던 40대 이상의 이직이 두드러졌다. 지난해 이직자 가운데 40대는 34%로 20대(25%)와 30대(26%)를 웃돌았다. 14%였던 50대 이상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직장을 옮긴 근로자의 48%가 40대 이상이었다.
일본 노동계의 '이직 35세 한계설'이 파괴되는 것은 스타트업의 급성장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많다. 인재확보전에 나선 스타트업들이 더 나은 처우를 내걸면서 '평생 직장'을 고수하는 40~50대들이 줄고 있다는 것이다.
스타트업의 구인조건 가운데 연봉 1000만엔(약 1억434만원) 이상은 21%로 13%인 상장기업을 웃돌았다. 연봉 800만~999만엔을 내건 비율도 스타트업은 30%인 반면 상장기업은 25%였다.
지난해 일본 스타트업의 평균 연봉은 804만엔으로 4년 전보다 20% 올랐다. 그 결과 2017년 38만엔이었던 상장기업과 스타트업의 연봉 격차가 지난해 15만엔까지 줄었다.
일본 최대 인재회사 리크루트에 따르면 작년 4분기 이직자 가운데 임금이 10% 이상 늘어난 근로자는 31.5%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코로나19 확산 직전인 2019년말보다 1.9%포인트 상승했다.
모테기 히로유키 리크루트웍스연구소 연구원은 "임금의 평탄화로 대기업에 남는 메리트가 줄어든 한편 (40대 이상 근로자도) 업무능력만 있으면 이직이 쉬워졌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에 설명했다.
중장년층 임직원에 대한 스타트업의 수요가 느는 점도 '35세 한계설'이 무너지는 이유다. 젊은 직원 중심의 스타트업에 풍부한 경험을 가진 중장년층이 가세하면 기업을 더욱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 인재가 부족해지면서 스타트업이 중장년층으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일본 경제계는 이직시장의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인재의 재분배가 산업을 활성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다. 2018~2019년 미국은 매년 근로자의 20%가 직장을 옮겼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미야모토 히로아키 도쿄도립대 교수는 "쇠퇴하는 산업에서 성장하는 산업으로 인재가 움직이면 경제도 성장한다"며 "이직이 활발해지면 일본 경제가 재도약하는 계기가 될것"이라고 말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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