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당선인의 공약집을 보면 대규모 주택 공급과 함께 재건축 등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부동산 취득과 보유, 거래 등 측면에서 다주택자에게 부과하던 각종 불이익 조치를 상당 부분 철회하는 조치가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기대감에 강남 대치은마와 잠실주공 5단지 등 강남 재건축 단지가 단숨에 1억원가량의 호가가 올랐다고 합니다. 1기신도시, 목동 등 주요 재건축 단지들에서도 매물이 거둬지거나 호가가 상승하는 모습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올해 들어 가격이 조금씩 안정세를 찾고 있던 집값이 다시 상향 조정될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대선 당시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완화,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 대출규제 완화 등 시장 친화적인 공약을 내세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비슷한 공약입니다. 이명박 정부의 주택정책은 ‘공급 확대 및 부동산시장 안정’였습니다. 종부세 완화, 주택공급 확대, 규제완화, 미분양 해소를 위한 건설업 지원 등의 부동산대책을 꾸준히 내놨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정부의 공언과는 달리 부동산시장은 널뛰기를 했습니다. 집값은 폭락했고, 전세가는 폭등했습니다. 공급 확대는 미분양 사태를 불러왔습니다. 싸이클로 볼 때 이명박 정부때에는 노무현 정부가 집값을 잡기 위해 썼던 정책의 효과를 받을 시기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임기 초기에는 공약의 영향을 받기 마련입니다. 시장의 기대감 때문입니다. 실제로 임기 초기에는 뉴타운 등의 기대감으로 강북권 중심으로 가격이 뛰었다가 다시 침체기에 들어갔고, 2009년에는 강남권 중심으로 집값이 상승하면서 규제 완화 카드를 쉽게 쓰지 못했습니다. 임기 초기 규제 완화책이라고는 지방 미분양 대책, 보금자리주택 150만호이 다였습니다.
제대로 된 규제 완화책은 세계적인 쇼크를 닥치면서 시작됐습니다. 2008년 9월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 규모의 경제 위기인 금융위기로 부동산은 물론 경제 흔들리면서 부동산시장이 침체를 겪기 시작했던 겁니다. 2008년 말께 강남권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에서 전면 해제됐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는 미분양 주택 양도세 한시 감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 등 다양한 규제 완화책을 폈습니다. 규제 완화로 가격이 반등을 하면서 2009년에는 하반기 수도권 LTV 강화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14년 전 과거 정부를 거울로 얘기하고 싶은 이유는 공약은 공약일 뿐 시장을 거스를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서입니다. 정부의 색깔과 상관없이 집값 과열이 되면 보수정부도 규제 강화의 정책을 필 수 밖에 없습니다. 집값이 침체되면 진보정부도 규제 완화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기준금리 마찬가지입니다. 기준금리는 2008년 8월에 무려 5.25%로 이자에 대한 부담감이 상당할 때였습니다. 물론 금융위기로 인해 금융위기로 2009년 2월까지 아주 급속하게 기준금리가 내려가면서 2%까지 떨어졌습니다. 6개월만에 3.25%포인트까지 떨어졌습니다만, 2010년 7월부터 기준금리는 계단식 가파른 오름세를 보이던 시기였습니다. 2011년 6월에는 3%를 넘기게 됐습니다.
현재 기준금리는 1.2%로 저금리 수준입니다. 그러나 불안한 물가 등으로 올해 2~3차례 더 기준금리를 올려 현재 1.25%인 금리가 연말엔 1.75%에서 2%가 된다는 전망이 나옵니다. 기준금리는 여전히 저금리 수준이지만 5대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이미 최고 연 5%를 넘어서 6%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영끌 등을 통해 가계대출이 심각한 상황에서 금리인상은 보유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최대 수혜 재건축 단지를 꼽는다면, 한강변 재건축 단지입니다. 서울시가 최근 발표한 ‘2040 서울도시기본계획’에 따르면 서울 주거지역 아파트를 35층 이상 짓지 못하게 한 규제가 사라지면서 압구정, 여의도, 이촌 등 한강변 주요 재건축 사업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때마침 윤석열 대통령 당선으로 기대는 한층 더 높아졌습니다. 대치 은마, 양천구 목동신시가지 등 수혜지로 꼽힙니다.
윤석열 당선인과 오세훈 서울시장의 서울 주택공급과 정비사업 활성화라는 방향성이 일치합니다. 그러니 재건축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은 더욱 힘이 실리는 모양새입니다. 방향성은 같지만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해 재개발 재건축 규제 완화에 앞서 시장 교란 행위 근절이 먼저이며 속도조절에 대해 언급해 오고 있습니다. 만약 강남권을 비롯해 재건축 아파트값이 급등하는 등 불안해질 경우 규제 완화 속도가 늦춰질 수도 있다는 얘깁니다.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도 변수입니다. 재건축 사업을 옥죄는 가장 큰 걸림돌이 바로 초과이익환수제입니다. 또 규제 완화를 위한 관련 법률 재·개정도 난관입니다. 국회에서 172석을 차지하고 있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재초환 완화 등 차기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부동산 정책들이 현 정부의 기조와 상반됩니다. 때문에 협상 과정에서 난항이 예상된다. 즉, 당장 완화되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가구당 수억원씩 부과되는 재건축초과이익 부담금이 풀리지 않는 이상 안전진단 등 재건축 규제가 완화가 된다고 할지라도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인가 등으로 이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기준금리 상승은 불보듯 뻔합니다. 향후 기준금리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한 변수가 '물가'인데 러시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우려가 현실화 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물가 상승이 불가피한 상황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국제원자재가격 상승을 통해 물가 오름세를 확대시킬 뿐 아니라 인플레이션 기대를 불안정하게 하고 있습니다. 최근 들어 해외 주요 선진국에서 인플레이션 장기화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더욱 커졌습니다. 수입 원재료가격 상승이 국내 소비자물가에 영향을 주면서 이미 외식비, 가공식품 등의 오름폭이 크게 확대됐고 추후에도 상승압박으로 이어질 전망입니다.
결국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명박 정부 때 역시 5%선으로 높았던 기준 금리가 금융위기 이후 크게 낮아진 금리로 가계부채가 크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2010년 금리가 갑자기 가파르게 오르면서 대출에 대한 상환부담은 커지게 됐습니다. 대출 비중이 높았던 투자자들의 부담이 커지면서 그들은 2009년말부터 매물을 슬금슬금 내놨습니다. 반대로 대출과 집값 하락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집을 사려는 매수자들은 수그러들면서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집값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집값이 조정이 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규제와 금리, 공급이 맞물려야 합니다. 그동안은 정부의 규제책으로 움직인 시장이었다면 올해부터는 금리 그리고 내년부터는 공급이 맞물리는 시기입니다.
부동산 정보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2023년 서울,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 입주물량은 15만2500여 가구입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각각 13만9000여 가구였습니다. 내년에는 2019년~2023년 최근 5년간의 평균 수치 수준으로 다시 정상 수준으로 돌아옵니다.
정부에 따르면 물량은 더 많아집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 인허가 물량은 정권 초기인 2017년 집중됐습니다. 이때 인허가 난 물량을 포함해 상반기 전후로 착공에 들어간 재건축·재개발 주요 단지가 7곳에 달합니다. 착공 전 단계로 철거를 시작한 주요 단지도 24단지로 집계됐습니다. 총 31개 재건축·재개발 단지가 서울에서 분양 대기중인 셈입니다. 31개 단지의 총 공급 물량은 5만2379가구, 일반분양 가구수는 1만8142가구에 달합니다. 개별 단지 이슈를 빼고 보면 분양가격만 책정하면 곧바로 분양이 가능합니다. 착공 단계라면 2023년 이후 본격화 됩니다.
3기 신도시 입주 예상 시기인 2024년 이후에는 집값 대세하락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과거 이명박 정부때에도 2기 신도시와 2기 신도시로 불리지 않았던 하남 미사, 남양주 다산 그리고 세곡지구 등 보금자리주택 입주물량이 본격화되면서 가격 하락을 더 부추겼습니다.
모든 것이 불확실한 현실에서 기대감으로 투자할 때는 아닙니다. 당장 집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면 시장 흐름을 잘 주시하면서 때를 기다리는 느긋함이 필요한 때입니다.
<한경닷컴 The Moneyist> 양지영R&C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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