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제에 들어 있는 근대 정신을 알아봅시다. 첫째, 군주제를 부정했습니다. 미국이 독립하기 이전에 세계는 거의 모두 군주제 아래 있었습니다. 군주제 세상은 ‘국왕이 원하는 한(during the king’s pleasure)’이라는 원칙으로 작동됐습니다. 왕의 권력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기에 왕이 국가를 좌지우지할 수 있었습니다. 국왕의 뜻대로 법이 제정되고, 관리가 임명되고, 재판이 이뤄졌습니다. 왕이 원하면 정복 전쟁도 해야 했습니다. 국왕이 인정하는 종교만 믿어야 했죠. 이런 군주제 아래에서 주권자는 왕 한 사람뿐입니다. 나머지는 그의 신민이죠. 이런 권력은 왕이 죽을 때까지 유지됐으며 혈통으로 세습됐습니다. 좋은 왕이든 나쁜 왕이든 말이죠. 미국 대통령제는 이런 구체제와 완전히 결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 시각에서 보면 미국식 민주주의는 급진적인 것이었죠.
둘째, 미국 사상가들은 그래서 ‘국왕이 원하는 한’을 ‘적법 행위를 하는 한(during good behavior)’으로 대체했습니다. 통치자도 적법 행위를 하지 않으면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한 겁니다. 왕처럼 법 위에서 군림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죠. 이것은 천동설이 지동설을 만난 것만큼이나 충격적인 전환이었어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모두 혁명가라고 해야겠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들을 반역자로 찍었죠.
셋째, 미국 민주주의는 대통령이라는 통치자를 선거로 뽑도록 했습니다. 왕권신수설에 콧방귀를 뀐 겁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생각. 지금은 당연시되지만, 당대에는 결코 당연한 생각이 아니었습니다. 미국 독립선언서에서 비롯된 이 정신은 대통령제를 규정한 미국 헌법에도 담겼습니다. 선거로 통치자를 뽑고, 정부를 구성하며, 정부가 생명·자유·행복추구권을 천부인권으로 보호하지 않으면 국민이 새로운 정부를 세울 권리가 있음을 선언한 겁니다. 왕 같은 통치자도 국민 아래 있음을 미국인들은 유럽 대륙을 향해 소리친 겁니다.
넷째, 대통령이 ‘선출된 왕’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건국의 아버지들은 대통령의 권한과 권력을 제한했습니다. 대통령 탄핵소추권과 탄핵심판권을 의회가 갖도록 했습니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을 쥔, 즉 왕에 버금가는 권력자인 만큼 자칫 과도한 열정과 개인적 욕심에 빠지면 공동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이 불법 행위를 저지를 경우 하원이 탄핵을 제기할 수 있고, 상원이 탄핵 심판을 하도록 했습니다. 또 세습이나 영구 집권 야욕을 근원적으로 막기 위해 임기제(우리나라 5년, 미국 4년)를 두었습니다. 미국의 경우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이후 연임 제한(두 번) 규정까지 새로 넣기도 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경계는 미국식 민주주의의 특징입니다. 대통령이 왕이 되지 않도록 제2, 제3의 장치를 마련한 겁니다.
다섯째, 대통령이 왕처럼 세금을 마음대로 걷거나 올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조세 입법권을 의회에 뒀습니다. 대신 의회가 법을 마음대로 제정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부여해 균형을 잡았습니다. 외적에 신속하게 대항하기 위해 군 통수권을 대통령이 갖되 전쟁선포권은 의회가 갖도록 힘을 분배했습니다. 사법부를 독립시켜 대통령 등 권력을 재판으로 견제토록 했습니다.
대통령제는 ‘모든 권력은 제한되고 견제돼야 한다’는 근대민주주의 정신에서 나온 멋진 제도입니다. 이렇게 보면, 대통령제는 제도 자체보다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권력 욕심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다고 보는 게 옳을지 모릅니다. 이번 기회에 미국 독립선언서와 미국 헌법을 한번 접해보세요. 1789년 3월 발효된 미국 헌법은 7개 조로 짧습니다. 이후 수정헌법이 더해졌는데 이것도 길지 않습니다. 대학에 가면 근대민주주의 작동 원리를 담은 《연방주의자 논고》도 잊지 말고 찾아보기 바랍니다.
고기완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2. 미국 독립선언서에 나타난 핵심 사상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3. 대통령제가 언제 한국에 들어왔는지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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