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진료실로 들어가실게요.”
커피숍이나 병원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저 말이 왜 이상해? 맞는 말이잖아’라고 생각할 정도로 일상에 깊이 파고든 표현이다.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진료실로 들어가세요’가 옳은 말이라는 걸 카페나 병원 직원들도 알지만 “왜 말을 제대로 높여서 하지 않느냐” “어디서 오라 마라 명령질이냐”며 화내는 사람들 때문에 굳어진 표현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갑질 때문에 사물에 존대를 하고, 이상한 어미를 붙이는 현상이 벌어진 셈이다.
무심코 쓰는 말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올바른 제언을 담은 《언어의 높이뛰기》는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고, 나의 언어 습관도 살펴보게 하는 책이다. 신지영 고려대 국문학과 교수는 ‘사람들을 언어에 주목하게 함으로써 언어 민감도를 높이면 어떨까’라는 질문에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고다운 스피치 아카데미’ ‘중학생 꿈나무 말하기 축제’ ‘다다다 발표대회’ 같은 ‘언어 감수성 프로젝트’를 20여 년간 진행하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리고 있다.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건 상대에게 들리고 읽히기 위해서다. 저자는 “상대의 감수성에서 어떻게 들리고 읽히는지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말을 할 때, 글을 쓸 때 우리는 듣는 사람 혹은 읽는 사람의 감수성을 고려해야 잘 들리고 잘 읽혀 진심이 전달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요즘 리얼리티 예능에 화장을 지운 연예인들이 등장하면서 ‘쌩얼’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고, 쌩얼을 민낯으로 대체할 것을 제안하는 목소리가 커져 민낯의 사용 빈도가 늘어났다. 민낯이 원래 의미대로 화장하지 않은 얼굴로 쓰이고 있으니 추한 실체에 빗대 사용하는 일은 삼가야 할 듯하다.
20대 대선이 끝나고 윤석열 당선자가 새 시대를 활발하게 설계하고 있다. 16대 대선까지만 해도 당선자라고 불렀는데 17대 때부터 호칭이 당선인으로 바뀌었다. 2007년 이명박 후보가 당선되자 인수위원회에서 언론에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표기해달라”고 요청한 게 계기가 됐다. 당선자의 ‘자(者)’가 ‘놈 자’ 여서 걸린다.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붙이기엔 불경스러우니 사람 인(人)자가 있는 당선인으로 불러달라는 것이 이유였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당선자’로 표기돼 있으니 당선자로 표현해달라고 취재진에게 요청했다.
저자는 유권자들이 대통령을 뽑았는데 유권자의 ‘자’는 괜찮고 당선자의 ‘자’는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지적한다. 요즘 언론의 표현을 살펴보면 당선자와 당선인을 혼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인해 언택트(비대면)라는 합성어가 널리 퍼졌다. 이 말은 영어권에서 유입된 게 아니라 《트렌드 코리아 2018》이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2007년부터 매년 간행되고 있는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는 다음해 예측에 ‘영어를 기준으로 축약한 표현’을 사용하는 걸 전통처럼 이어가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저자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표현하는 현실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가 하면 K팝이 큰 인기를 끌면서 세계 팬들이 ‘오빠, 누나, 언니, 막내’ 등의 단어를 우리말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아이돌이 우리말을 퍼뜨린다고 해 ‘돌민정음’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언어의 높이뛰기》를 통해 언어와 관련된 풍부한 정보를 접하며 나의 언어 감수성은 어느 수준인지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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