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숙, 네이버 대표 물러났지만…존재감은 오히려 더 커졌다 [강경주의 IT카페]

입력 2022-03-19 10:59   수정 2022-03-19 16:43


지난 5년간 네이버의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가 그룹의 유럽사업개발 대표로 '제2의 도전'에 나선다. 대표직에선 내려왔지만 네이버의 글로벌 공략이 최대 과제로 떠오르면서 한 전 대표의 역할이 도리어 전보다 더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성숙 글로벌 감각, 커머스·콘텐츠서 두드러져
19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네이버는 최근 한 전 대표를 유럽사업개발대표로 발령했다고 사내 공지했다. 현재 조직도에도 직함이 반영된 상태. 한 전 대표가 담당할 업무가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검색·지식 중심의 네이버를 커머스·콘텐츠·인공지능(AI) 중심으로 키운 역량을 비춰봤을 때 글로벌 시장에서도 비슷한 노선을 밟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온다.

한 전 대표는 지난해 2월 스페인 1위 중고거래(리셀) 플랫폼 '왈라팝'에 1550억원을 투자하며 유럽에서의 본격 활동에 방아쇠를 당겼다. 왈라팝에서는 패션·의류·전자기기와 같은 일반적 소형 품목 외에도 자동차·오토바이·부동산까지 다양한 품목들이 거래된다.

당시 한 전 대표는 왈라팝에 투자하면서 "글로벌에서 개성과 친환경, 가성비를 함께 중시하는 Gen-Z(Z세대)를 중심으로 리셀 시장의 성장이 관측되고 있다"며 "네이버가 미래 트렌드를 이끌 세대들을 선점해 장기적 글로벌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마일스톤(이정표)이 될 수 있도록 검토해나갈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또 국내에서 오픈마켓 형태의 '스마트스토어', 소상공인과 창작자들의 다양성에 네이버의 기술을 더해 함께 성장하는 '프로젝트 꽃' 등을 통해 유통업계에 상생안을 제시한 점 역시 공로로 인정받은 만큼 한 전 대표의 능력은 개성 강한 소상공인이 중심인 유럽 시장에서도 통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특히 한 전 대표의 글로벌 감각은 콘텐츠에서 두드러졌다는 평가다. 글로벌 1위 웹툰사인 네이버웹툰은 아시아와 북미에 이어, 프랑스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내며 서서히 유럽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2019년 12월 프랑스어 버전을, 지난해 4월에는 독일어 버전을 출시했다. 프랑스어 웹툰 서비스의 경우 2020년 11월 유료 전환을 실시한 직후부터 현재까지 프랑스 구글플레이 만화 부문에서 다운로드와 수익 모두 압도적 1위 자리를 지키는 중이다. 독일어 웹툰 서비스도 월간실사용수와 매출 모두 현지 웹툰·만화 앱 중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웹툰은 아마추어 작가 등용문 '캔버스'(CANVAS)를 통해 현지 콘텐츠를 발굴하는 등 유럽의 웹툰 저변 확대에도 집중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캔버스의 작품 수는 1만개를 넘어섰고, 스페인 캔버스 서비스도 아마추어 창작자 수가 1만명을 돌파했다.

이에 따라 지난 1월 네이버웹툰 글로벌 월간활성이용자(MAU)는 사상 최대치인 8200만명을 기록했다. 2020년 12월 7200만명을 돌파한 이후 1년여 만에 1000만명이 증가한 것이다. 같은 기간 글로벌 웹툰 월 거래액은 1000억원을 재돌파했다. 앞서 네이버웹툰은 지난해 8월에도 최초로 월간 거래액 1000억원을 넘어선 바 있다. 지난해 왓패드 인수 등을 통해 웹툰 글로벌 연간 거래액은 1조원을 넘어섰다.
유럽 내 스타트업에도 꾸준히 투자
네이버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로 2017년 3월 대표직에 오른 한 전 대표는 지난 5년간 꾸준히 유럽의 문을 두드렸다. 2016년 프랑스 전 장관과 손잡고 코렐리아 캐피탈의 K-펀드1에 참여한 것이 그 첫 발이었다.

코렐리아 캐피탈은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장관과 문화부 장관을 역임한 한국계 입양아 출신인 플뢰르 펠르랭 대표가 2016년 창립한 3억 유로 이상의 자산을 운용하는 투자 플랫폼으로 유럽의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있다.

이중 네이버가 K-펀드1에 2016년 9월과 2017년 10월에 각각 1억 유로씩 총 2억 유로를 출자했다. 이 펀드를 통해 네이버는 왈라팝을 비롯해 ▲유럽 1위 럭셔리 리셀 커머스 '베스티에르 콜렉티브' ▲프랑스 음향 기술 스타트업 '드비알레' ▲리크루팅 플랫폼 스타트업 '잡티저' ▲모빌리티 서비스 '볼트' 등 유럽 유망 기업에 투자했다.

유럽 스타트업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네이버는 2017년 6월에는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에 네이버-라인의 공간인 '스페이스 그린'(SPACE GREEN)을 개소했다. 2018년 3월부터는 국내 스타트업의 유럽 진출 프로그램 'D2 유럽 캠프'를 가동하고 있다.

아울러 네이버는 2017년 6월 AI 연구소 제록스리서치센터유럽(XRCE, 현 네이버랩스 유럽)을 인수한 데 이어 프랑스 현지에 네이버 프랑스를 운영하고 있다. 네이버 프랑스는 유럽 IT 투자 및 연구개발(R&D)이 주된 목적이다. 또 독일에 네이버 클라우드 유럽도 운영 중이다.
"앞으로 펼쳐질 네이버의 글로벌 스토리에 응원해달라"
한 전 대표는 지난해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며 매출 면에서 '네이버 황금기'를 이끌었다는 평가는 받고 있다. 네이버는 지난해 회사 창립 이래 처음으로 매출 6조원을 넘기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내수 중심 검색 포털에서 글로벌 커머스·콘텐츠 강자로 체질을 바꾼 원년에 기록한 의미 있는 실적이다.

한 전 대표는 최근 콘퍼런스콜(전화 회의)에서 "네이버가 글로벌 진출을 선언하고 새로운 사업을 위한 투자를 본격화할 때 시장의 기대 못지않게 우려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도전과 투자를 통해 네이버의 사업 포트폴리오가 현재와 미래 국내와 글로벌을 모두 잘 아우르며 지속 성장할 수 있는 이상적 구조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 5년간 제 역할이 글로벌 진출을 위한 기술과 사업적 기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것이었다면 새로운 경영진은 지금까지 쌓인 네이버의 기술과 비즈니스 노하우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글로벌 도전을 통해 지금보다 더 큰 성장을 끌어낼 것"이라며 "앞으로 펼쳐질 글로벌 성장 스토리에 여러분의 끊임없는 응원과 격려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는 "한 전 대표는 최수연 신임 네이버 대표 등 현 네이버 최고경영진과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면서 유럽에서 제휴하고 투자할 회사를 물색하고 전략을 세우는 일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며 "공식적으로 해외 투자, 해외 전략 담당은 앞으로 '이해진 한성숙' 투 트랙 체제로 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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