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80개국에서 3만2000개 매장을 운영하는 ‘커피 제국’을 일군 스타벅스의 하워드 슐츠 명예회장(68)이 다음달 스타벅스 최고경영자(CEO)로 돌아온다. 2018년 회장 자리에서 물러난 지 4년 만이다.
다음달 4일 은퇴하는 케빈 존슨 CEO의 뒤를 잇게 될 그의 역할은 구원투수다. 인플레이션 탓에 운영 비용이 늘어난 데다 바리스타들의 노조 설립 움직임도 경영에 부담을 주고 있다. 그의 기본급은 1달러. 올가을 후임 CEO를 정식 선임할 때까지 산적한 과제를 푸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슐츠는 “스타벅스로 돌아올 계획은 없었다”면서도 “새롭고 신나는 미래를 향해 다시 한번 (스타벅스가) 바뀌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슐츠는 뉴욕 브루클린 빈민가의 임대아파트에서 자랐다. 아버지인 프레드 슐츠는 1961년 기저귀를 배달하다 빙판에 미끄러져 엉덩이와 발목을 크게 다쳤다. 다리에 깁스를 하고 거동조차 하기 어려웠던 프레드는 사고 탓에 직장에서 해고됐다. 하지만 의료보험 혜택도, 퇴직금도 받을 수 없었다. 그의 가족은 푼돈을 벌기 위해 밤마다 자신들의 집을 도박꾼에게 빌려줘야 했다. 당시 슐츠의 나이는 고작 7세였다. 대학에 들어가선 학비를 벌기 위해 혈액을 팔기까지 했다. 어린 나이에 생계를 위해 돈을 빌리려 이집저집 오가던 그는 “사람들을 돌볼 수 있는 자리에 오르면 그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가난의 경험은 스타벅스에 살아 있는 유산이 됐다. 스타벅스는 1988년부터 정규직 직원은 물론 시간제 근로자에게도 의료보험 혜택을 제공한다. 세계 기업 중 첫 시도였다. 1991년엔 상장을 앞두고 모든 직원에게 스톡옵션을 줬다. ‘빈스톡’ 제도다. 모든 직원의 호칭은 파트너다. ‘종사자’가 아닌, ‘동업자’라는 뜻이다. 이들이 자부심을 느끼도록 돕는 게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스타벅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82년이다. 당시 스타벅스는 매장이 네 곳밖에 없는 작은 원두 판매점이었다. 원두를 사다가 집에서 커피를 마시는 미국 커피문화에 맞춰 질 좋은 원두를 공급하는 데 집중했다. 스타벅스 마케팅 이사가 된 슐츠는 이탈리아 밀라노 출장에서 새로운 커피 문화에 눈을 떴다. 에스프레소 커피를 마시며 매장에 모여 대화를 나누는 유럽인을 보며 그는 “카페는 커피를 파는 곳이 아니라 공간을 파는 곳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스타벅스 경영진은 이런 변화를 주장하는 슐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슐츠는 자신의 비전에 확신이 있었다. 1985년 스타벅스를 나와 이탈리아식 커피숍인 일지오날레를 창업했다. 미국에 없던 혁신적인 서비스와 슐츠의 열정에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1987년 슐츠는 스타벅스를 380만달러에 인수했다. 스타벅스 파트너 앞에 처음 선 날 그의 손에 들린 메모장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진심을 말하라, 그들의 입장에 서라, 그들과 큰 꿈을 공유하라.’ 이 세 문장은 슐츠의 경영 원칙이 됐다. 스타벅스는 공간을 파는 장소로 탈바꿈했다. 취임 4년 만에 100개가 넘는 매장을 보유한 커피전문점으로 재탄생했다.
스타벅스 CEO에서 회장으로 자리를 옮긴 지 1년 만인 2018년 슐츠는 스타벅스 경영에서 손을 뗐다. 4년 만에 다시 CEO에 오르는 그의 앞엔 또다시 위기가 산적했다. 지난해 말 뉴욕 버펄로 매장을 시작으로 노조 설립 움직임이 봇물처럼 번졌다. 미국 약 9000개 매장 중 노조 결성을 추진하는 곳만 130곳을 넘었다. ‘공간’을 팔던 스타벅스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았다. 물리적 공간인 커피전문점이 수시로 문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물가가 오른 데다 직원들의 임금 부담도 늘었다. 지난해 3월 이후 1년간 스타벅스 주가는 24% 하락했다. 같은 기간 동종업계 주가는 평균 5% 떨어졌다.
취임을 앞둔 슐츠의 목표는 소비자 경험을 바꾸는 것이다. 그는 “스타벅스의 미래 경험을 재창조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재취임 소식이 알려진 지난 16일 스타벅스 주가는 5.2% 상승했다. 시장에선 일단 합격점을 보낸 셈이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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