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평짜리 낡은 빌라엔 여섯 식구가 산다. 약물 성범죄를 당할 뻔한 뒤 회사를 그만둔 수경, 그런 딸의 곁을 지키는 엄마 여숙, 이렇다 할 직장 없이 집에서 생활하는 아버지 천식, 이익보다 손실이 큰 전업 투자자 남편 우재, 수경의 집에서 얹혀살며 일찍 철들어버린 조카 지후와 준후다. 그리고 그 집을 드나드는 중학생 은지와 대학생 보라가 있다.
모아둔 돈은 점점 줄어들고, 방황하던 수경은 이내 마음을 다잡고 가족들에게 선언한다. 우리 계속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이젠 때가 되었다. 그들 모두 정신을 차릴 때가. 네 명의 성인이 거주하는 집에서 단 한 명도 돈을 벌어오는 사람이 없다니…….”
취업이 쉽지 않은 수경네 가족이 택한 것은 플랫폼 노동이다. 수경과 여숙은 자차 배송과 심부름 앱인 ‘헬프 미 시스터’ 일을, 우재는 배송과 대리운전을, 천식은 뚜벅이 음식 배달을 시작한다. 은지와 보라도 수경을 돕겠다며 발 벗고 나선다. 소설은 플랫폼 노동의 현실을 생생하게 그린다.
“수경은 벤치에서 일어났다.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자차 배송 기사의 시급은 본인이 결정한다. 뛰면 시급이 오르고, 걸으면 시급이 내려간다. 요의를 참으면 오르고, 화장실에 자주 들르면 시급이 내려간다. 밥을 굶으면 오르고, 밥을 먹으면 내려간다.”
그런 가운데 인물들은 성장한다. 여숙과 천식은 무서워하던 운전도 어느새 제법 멋지게 해내고, 키오스크 앞에서 직원의 도움 없이 음식 주문을 거뜬히 해낸다. 방구석에서 주식 차트만 보던 우재는 적극적으로 변한다.
수경은 이렇게 말한다. “스스로 일어서는 것. 상처를 지닌 채로 걸어가는 것. 다시 사회에 뛰어들어 생계와 보람을 위해 살아가는, 사회와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플랫폼 노동자로 살아가는 이들이지만 소설은 희망적으로 끝난다.
묘사가 생생한 것은 작가의 경험이 반영돼 있어서다. 그는 2014년 등단한 후에도 택배 자차 배송, 시나리오 각색 등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일을 전전했다. 북카페를 운영하다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문을 닫기도 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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