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을 놓고 정면으로 부딪쳤다. 문 대통령이 21일 주재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윤 당선인의 ‘1호 사업’인 ‘대통령 집무실의 국방부 청사 이전’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밝히는 초유의 신구(新舊) 권력 간 충돌이 벌어졌다. 윤 당선인 측은 즉각 “문 대통령이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현직 대통령과 차기 대통령 간 갈등이 격화하면서 윤 당선인 취임일(5월 10일)까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정국 혼란이 예상된다.
이 같은 입장은 윤 당선인이 대통령 집무실 이전과 관련해 브리핑을 했던 하루 전날과 비교해 확연하게 달랐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오전 청와대 이전 공약에 대해 “당선인의 공약이나 국정운영 방향을 존중하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며 집무실 이전 공약을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은혜 당선인 대변인은 이날 언론 브리핑에서 집무실 이전에 필요한 예비비 관련 질문에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 검토를 거쳐 22일 국무회의에 상정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예비비 편성은 난항을 겪게 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시간을 가지고 충분한 협의를 거쳐 최종 결정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힌 만큼 예비비의 22일 국무회의 상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이날 브리핑에서 “준비되지 않은 국방부와 합참, 청와대 위기관리센터의 갑작스러운 이전은 안보 공백과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며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날 밤 12시까지 국가안보와 군 통수는 현 대통령의 내려놓을 수 없는 책무”라고 했다.
김 대변인은 청와대 입장이 나온 직후 “윤석열 당선인은 어제 대통령실 용산 이전에 대해 국민께 정중하고 소상하게 말씀드렸다”며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대표적인 정권 인수인계 업무의 필수사항을 놓고 협조를 거부하신다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전날 윤 당선인이 “취임 첫날부터 국방부 청사에서 집무를 보겠다”고 한 약속도 지켜지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집무실 이전을 위해 예비비를 사용하기 위해선 문 대통령이 주재하는 국무회의에서 예비비 편성 안건이 통과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더불어민주당은 예비비를 활용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이 인수위 권한을 넘어선 것이라고 비판해왔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재해 복구에 쓰여야 할 예비비를 청와대 이전 비용으로 쓰겠다는 발상은 반민생적”이라며 “예비비 집행을 위해선 국무회의에서 의결해야 하는데, 인수위는 강제할 법적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 측은 윤 당선인 측에 예비비 안건을 상정하기 어려운 구체적인 사유를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윤 당선인 측의 외교·안보 분야 핵심 관계자는 ‘청와대가 거세게 반발하는 이유’를 묻는 말에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미국 측이 안보 이슈를 이유로 제동을 걸었다는 일각의 관측에 대해선 “미국이 청와대 옮기는 것까지 신경을 쓰겠냐”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은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가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국방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을 방해하는 것은 저급한 정치적 공세, 대선 불복이라 볼 수밖에 없다”고 맹비난했다.
다만 양측 모두 정권 이양기에 신구 권력이 극단적인 대립으로 치닫는 분위기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어 상호 해법을 찾기 위한 실무 협의는 열릴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예비비 편성과 관련해 “언제든지 협의가 잘되면 임시국무회의를 바로 열어서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크게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소현/김인엽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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