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의료진은 모두 내 친구
아랍권 남성 환자분들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언제 어디서나 금방 적응을 하는 편이다. 그들의 친화력은 한국 의료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어느 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회사로 연락이 왔다. 환자가 담당 간호사를 “Sister”라고 부르며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대했는데, 아무래도 환자의 지나친 친화력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는 아랍 문화에 대한 설명과 양해를 구했고, 환자에게도 한국의 병실 분위기 전반을 이야기하며 조심해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한 번은 아랍 환자에게 병원 진료 예약을 위해 현지에서 받은 검사 자료를 요청했는데, 파일을 열어 보니 활짝 웃고 있는 본인의 셀카와 함께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환자에게 자료를 잘못 보낸 것 같다고 말하니 “이 사진들처럼 여전히 건강해요”라며 의료진에게 본인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천진난만한 아랍 환자들을 만날 때면 조용했던 사무실이 즐거워진다.
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원격진료
몽골에서 뇌종양으로 한국치료를 고민 중인 70대 할아버지의 원격진료를 진행하게 됐다. 환자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아들과 통역사가 합심해 환자인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설명해야 했는데, 문제는 환자가 의료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현재 증상을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20살 때부터의 인생사를 아주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들려주기 시작했다. 10분이 넘도록 ‘몽골판 라떼는 말이야~’가 계속되자 아들이 옆에서 열심히 말렸지만, 꿋꿋이 본인의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예정된 원격진료 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진료가 끝이 났지만 할아버지는 아주 흡족해하시며 한국 의료진에 격려와 감사의 말씀을 남기고 떠나셨다. 지난해부터 정말 많은 원격진료를 진행했지만 가장 시끄러웠고, 또 환자가 가장 많이 말을 한 진료가 아니었나 싶다.
환자가 상담을?
한국에 치료를 받으러 오는 외국인 환자들은 대부분 본인의 질환에 대해 굉장히 많이 알고 있어 반 의료진이나 다름 없다. 한 번은 시험관아기 시술을 위해 한국에 온 우즈베키스탄 환자의 통역을 다녀온 동료가 본인이 환자에게 진료를 받고 왔다고 했다. 이 환자는 현지에서 7년 정도 난임 치료를 받다가 결국 한국을 찾게 됐는데, 난임 말고도 자궁 질환을 앓고 있어 산부인과 쪽으로는 아주 해박했다. 당시 동료는 심한 생리통으로 고생 중이어서 환자가 진료를 기다리는 시간마다 주치의 역할을 하며 “언제부터 생리통이 심했나요?”, “이 약은 복용해 봤나요?” 등등 의료진이 물을 법한 질문들을 했고, 동료에게 맞춤 처방까지 내려줬다고 한다. 그리고 동료는 결국 환자의 통역을 위해 찾은 병원에서 본인의 진료까지 예약하고 왔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다.
아픈 몸을 이끌고 한국까지 찾아온 환자들을 대하는 일은 늘 조심스럽고 어렵지만, 결국 환자를 위하는 마음이 있으면 그 진심은 자연스럽게 전달이 되는 것 같다. 가끔씩 예상치 못한 일들로 우리를 깜짝 놀라기도 하지만 환자 입장에서 헤아려보면 또 이해 못할 부분은 없다. 우리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선에서의 깜짝 이벤트라면 기꺼이 환자의 가장 가까운 한국 친구이자 든든한 보호자가 되어 본다.
조아라 씨는 한국의 대형 병원에서 5년간 마케팅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스타트업 하이메디에 입사했다. 현재 한국의 첨단 의료 기술을 필요로 하는 외국인 환자를 위한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해 외국인 환자와 한국병원을 연결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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