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최근 기획재정부에 임기말 공공기관 임원 및 감사 등의 임명 내역 제출을 요구했다. 5월 새 정부 출범 전에 임기가 만료되는 임원들의 명단은 물론 최근 임명된 인사들의 여권 연관성도 여기에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과 당선인 회동, 청와대의 국방부 이전 등을 놓고 불거지고 있는 신·구 권력의 갈등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정권 교체기마다 불거지는 공공기관 인사 혼란을 막기 위해 새로운 원칙을 여야가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청와대와 인수위 간의 갈등이 확대되는 가운데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한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며 "당장 정부를 공격하지는 않더라도 특정 시점에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고 말했다.
기재부에 대한 자료 요구는 국민의힘이 지난 15일부터 자체적으로 공공기관 인사현황을 조사하고 있는데 따른 후속조치 성격이다. 올해 들어서만 한국마사회 회장과 한국공항공사 사장 등 주요 공공기관 15개 보직에 여권 인사가 임명된 것으로 나타나면서 국민의 힘은 '현 정부가 차기 정부 공공기관에 친여 성향 인사를 알박기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
이에 따라 국민의힘은 당 차원에서 상임위별로 작년 12월 이후 부처 및 공공기관 임명 인사 현황을 조사 중이다. 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 임원 및 감사의 임기 및 임명 관련 정보는 공공기관 정보시스템 알리오를 통해 손쉽게 파악할 수 있다"며 "국민의힘이 파악한 내용에 부족한 부분이 없는지 기재부 자료를 제출받아 검증하려는 의도로 보인다"고 말했다.
해당 자료를 토대로 인수위는 새 정부 출범 이전에 임기가 만료되는 공공기관 주요 보직의 임명도 연기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공개된 일정에 따르면 주택금융공사 상임이사, 예탁결제원 감사 등의 임기가 차기 정부 출범 전에 끝나 새로 임명해야 한다.
한 정부 관계자는 "사실 박근혜 정부 이전만 해도 정권이 교체되면 임기와 상관 없이 전 정부 인사는 물러나는 것이 관례였다"며 "국정농단 사태 때 블랙리스트 문제 등이 불거지며 이같은 관례 자체가 불법화되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차기 정부에 인사권을 주기 위해 자리를 마냥 비워놓는 것이 맞냐는 지적도 있다. 공공기관 감사나 이사 등의 인사가 정해지려면 정권이 바뀌고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해 업무공백이 수개월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정부에서 임명한 인사가 차기 정부에서 직을 유지하는 것도 국정운영에 차질을 줄 여지가 있다. 공공기관들이 국정과제 수행의 한 축을 유지하는 가운데, 전 정부 인사는 태업하고 현 정부는 집중 감사 등을 통해 해당 공공기관에 조직 차원의 불이익을 줄 수 있어서다.
한 전직 고위 관료는 "공공기관 중 국정 수행과의 밀접성을 판단해 꼭 필요한 자리들은 대통령 취임과 함께 임명하고, 정권이 바뀌면 모두 물러나는 미국식 모델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며 "대신 전문성이 필요한 공공기관에 대해서는 독립적인 인선 시스템과 임기를 보장해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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