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무역개발회의는 2021년 7월 2일 개최된 무역개발이사회 폐막 세션에서 만장일치로 우리나라의 지위를 그룹 A에서 선진국이 속한 그룹 B로 변경하였다. UN이 1964년 총회 결의에 따라 UNCTAD 회원국을 그룹 A(아시아·아프리카 99개), B(선진국 31개), C(중남미 33개), D(러시아, 동구권 25개)로 구분한 이래 57년만에 최초로 회원국 지위 변경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제 우리는 경제 규모로는 세계 10위 국가이며, 30-50클럽(국민소득 3만달러, 인구 5천만명)에도 가입하였고 외국의 원조를 받는 나라에서 원조를 하는 나라가 되었으니 이러한 선진국 진입은 당연하면서도 경사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노동법을 들여다 보면 마냥 좋아할 수 없고 우리 나라가 진정으로 선진국이 맞나 싶을 때가 자주 있다. 흔히 후진적 노사관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노사간 벼랑 끝 대치, 극단적 점거 농성, 자극적인 내용의 플래카드, 유혈 폭력이 반복되는 노사현장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영국, 미국, 유럽, 일본 등 선진국 법제에서 바라보았을 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때론 야만의 기운마저 느껴지는 노동법 이야기이다. 원래 노동법은 속지주의 성격이 강해서 나라마다 서로 같을 수가 없다고는 하나 우리나라 노동법은 너무 유별나고 이른바 글로벌 스탠다드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우리나라 노동법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 중 첫째로는 매사 형벌로 해결하는 형벌만능주의를 들 수 있다. 근로자파견법 위반으로 장기간 수사를 받고 기소되어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외국인 CEO 이야기는 너무 유명하다. 전세계에서 근로자파견을 전면적으로 불법화하고 행정입법으로 일부를 허용하면서 위반자에 대하여 형사처벌까지 하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른바 선진국 가운데에서는 전혀 없다. 민사재판을 해서 어쨌든 불법파견에 해당한다면 직접고용을 하라고 판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해당 외국인 CEO가 언론을 통해서 하소연한 내용을 보면 그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다. 외국인들은 일단 그게 죄가 되고 형사처벌의 대상이라는 것을 모르고 입국한다. 그런데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피의자로 입건되고 수사를 받는다. 노동청에도 출석해야 하고 검찰에도 출석한다. 외국인이므로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출국이 금지되고 가족이 있는 본국에 갈 수도 없게 된다. 길어야 2년 정도 근무하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 통상의 임기보다 수년 더 우리나라에 머무르게 되고 승진은 꿈꿀 수도 없게 된다.
근로자의 노후 보장을 위한 퇴직금 제도는 또 어떤가. 취지는 좋으나 이 또한 전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어쨌든 우리나라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은 근로자의 퇴직 후 금품청산 기간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14일이라는 단기간으로 못박고 있다. 담당 직원이 업무가 서툰 탓에 이 기간을 넘길 수 있다. 평소 다니던 회사에 모종의 불만이 있었던 퇴직 직원은 옳다구나 하고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위반으로 사장을 고소한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사장은 뒤늦게 노동청의 연락을 받고 부랴부랴 이를 챙겨서 퇴직금을 지급해 보지만 퇴사 직원의 목적은 애초부터 퇴직금의 수령이 아니라 사장에 대한 보복이니 고소 취소를 해 주지 않는다. 사장은 꼼짝 없이 노동청에 출석하여 조사를 받고, 운이 좋으면 기소유예, 운이 나쁘면 벌금을 내고 전과자가 된다. 형벌이 매우 엄격하게 운영되는 나라에서 온 CEO는 졸지에 전과자가 되고 외국 여행을 할 때마다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절망하게 된다.
우리나라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에서 “근로자에 대하여 감급의 제재를 정할 경우에 그 감액은 1회의 금액이 평균임금의 1일분의 2분의 1을, 총액이 1임금지급기의 임금 총액의 10분의 1을 초과하지 못한다.”고 규정한다. 이런 조항이 왜 근로기준법에 들어가 있는지 알 길은 없으나 풀어보자면 감봉은 1달에 평균임금 0.5일분씩 여섯 달을 한계로 하는 것 같다. 문제는 평균임금이 얼마인지 계산하는 것이 쉽지 않을 뿐더러 어떤 때는 취업규칙이 이와 다른 내용을 정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나중에 대표이사가 된 사람은 취업규칙만 믿고 징계를 내리게 될 것인데 그러면 바로 근로기준법 위반이 된다는 것이 현재 법원 판례다. 기실은 임금체불인데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임금체불과 달리 나중에 해당 근로자가 차액을 받고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의사를 표시하더라도 처벌을 면할 수 없다.
그 외에도 우리 노동법상 숨어 있는 이해할래야 이해할 수 없는 형사처벌 조항은 헤아리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다. 형사처벌을 전제로 일 단위와 주 단위로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는 근로시간제도는 이 땅의 사업주들을 잠 못 들게 하고,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내기는커녕 있던 일자리마저 없애 버렸다. 사용 자체로 형사처벌의 위험이 있는 운전기사 일자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려운 형편이다.
실질은 과실범에 불과함에도 어마어마한 형사처벌을 규정하고 있는 중대재해처벌법 역시 경영책임자들을 불안에 떨게 하기는 마찬가지다. 심지어 이 때문에 사업을 정리하거나 회사를 그만 두는 임원들도 적지 않다는 소문이다. 민사재판 혹은 과태료로 해결해도 될 일을 모조리 형사처벌을 하는 바람에 대한민국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은 하루하루를 가슴 졸이면서 살 운명이 된 것이다.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스티브 잡스가 우리나라 단독주택의 차고에서 사업을 했다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노동법 위반으로 법적 대응을 하느라 연구개발을 할 시간이나 여유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마냥 우스개 소리로 치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회사가 어느 정도 크면 전문경영인을 영입하고 자신은 최대 주주나 이사회 의장으로 충분한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사업 초기에는 그럴 수도 없다.
이렇듯 창업을 권장하면서도 창업을 한 혁신가들을 전과자로 만들 수 많은 법의 지뢰를 깔아 놓은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우리나라 말고는 없을 것이다. 이런 것을 잘 알고 있는 노동법 전문가의 입장에서 가족이나 친지가 스타트업을 한다면 흔쾌히 동의할 수 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실제로 당초 동업자들끼리 사업을 시작했다가 투자를 유치하여 직원을 고용해야 할 정도로 사업이 성장하는 시점이 되면 인사노무 전문가를 찾게 되고 인사관리 때문에 골머리를 싸매게 된다.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되는 것이다.
갈라파고스는 남미 에콰도르령으로서 다윈의 진화론에 결정적 근거를 제공한 섬인데 요즘은 자신들의 표준만 고집함으로써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 즉 시대착오를 가리키는 갈라파고스 신드롬으로 더욱 유명하다. 외부세계와는 완전히 고립된 채 자기 것만을 내세우게 되면 그 사회는 자신도 모른 채 시대착오적인 세상이 되고 말 것이다. 한국에서 CEO가 된다는 것은 형사처벌의 위험을 자청하는 것에 다름아니라는 마당에 우리나라에 직접 투자를 할 외국계 기업이 얼마나 있을까. 그리고 그러한 외국계 기업에서 능력 있는 한국 법인장을 찾기는 또 쉬울까. 우리나라 노동법이 몇 시인지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욱래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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