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巨野에 대비하는 인수위 "입법 없이 가능한 공약 우선 추진"

입력 2022-03-22 15:44   수정 2022-03-22 16:11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윤석열 당선인의 후보 시절 공약과 관련, 각 부처에 입법 없이 대통령 지시로 가능한 공약을 별도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윤 당선인이 취임 직후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공약부터 우선 추진하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특히 공시가 인하 등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한 공약이 우선순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공약 추진 시기가 기준
22일 인수위에 따르면 전날 안철수 인수위원장 주재로 열린 2차 전체회의에서 이런 내용의 인수위 운영 계획이 논의됐다.

한국경제신문이 입수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운영계획'에 따르면 인수위는 각 부처가 제출할 공약 이행 계획에 입법 계획을 반드시 포함하라고 주문했다. 법률이나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제·개정 필요 여부를 보고하라는 지시다.

그러면서 '입법 없이 대통령 지시로 추진 가능한 사항은 명기'하도록 했다. '우선추진 공약'과 '일반추진 공약'을 구분할 때 '공약 추진 시기'를 기준으로 하라는 당부도 덧붙였다.
○정부 초 여소야대 부담
인수위가 각 부처에 대통령 지시만으로 추진이 가능한 공약을 먼저 선정하도록 한 것은 윤 당선인이 취임 직후 국정운영을 하는 데 초유의 여소야대(與小野大)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현재 민주당은 국회 내 172석으로 과반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의 동의가 없이는 법률의 제·개정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당장 정부 출범을 하는 데 필요한 정부 조직개편은 정부조직법 개정 사항으로, 민주당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인수위 관계자는 "국회만 바라보다가는 취임 초기부터 레임덕에 빠질 수 있다"며 "일 잘하는 유능한 정부를 강조한 윤 당선인인 만큼 취임 초기부터 국회 동의 없이 추진이 가능한 공약부터 정책 우선순위에 둘 것"이라고 전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취임 직후 여소야대 상황에서 '업무지시'라는 이름으로 각 부처에 정책 추진을 주문했다. 문 대통령 취임 당시 20대 국회에서 민주당(123석)은 다수당이기는 했지만,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112석)과 민생당(20석) 등 야당의 의석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작으로 국정 역사 교과서 폐지, 30년 이상 석탄발전소 일시 중단 등의 업무지시를 내렸다. 당시 청와대는 "업무지시 자체의 법적 효력은 없지만 '대통령 지시사항 관리지침'에 따라 정부 전자 시스템에서 추진현황을 점검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시행령 정치' 본격화할 듯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공시가 인하, 병사월급 200만원, 청약제도 개선 등 법률이 아닌 시행령, 시행규칙 등의 개정으로 가능한 공약이 우선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올해 주택 공시가격을 2020년 수준으로 환원하겠다"며 부동산 세금 부담 완화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는 지방세법과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에서 공정시장가액비율 조정을 통해 가능하다. '병사월급 200만원' 역시 공무원보수규정을 손보면 된다. 다만 예산 확보를 위한 민주당의 동의는 필요하다. 1인 또는 신혼부부 대상 청약제도 개선 공약은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 개정 등으로 추진이 가능하다.

이날 윤 당선인이 인수위 7개 분과 간사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자리에서 주문한 '코로나19 소상공인 손실보상' 대책 역시 시행령 개정사항이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도 이른바 '시행령 정치'가 이뤄진 적이 있다. 법률의 국회 통과가 쉽지 않자 시행령 이하 행정 입법을 시도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무분별한 시행령 개정으로 '입법 패싱', '삼권분립 흔들기' 등의 비판이 일었다. 회사에 5억원 이상의 횡령·배임·사기 피해를 준 기업인들의 회사 복귀를 금지한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시행령 개정 등이 대표적이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야당이 의회에서 과반을 차지하면서 정부 초기 정책 추진이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삼권분립에 근거한 법치주의 체계가 흔들리지 않도록 시행령을 무분별한 정책 수단으로 삼지는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미현/이동훈/강진규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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