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1등 매트리스' 품은 정지선…"내수 한계 돌파" 승부수

입력 2022-03-22 17:20   수정 2022-03-23 00:50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사진)이 내수(內需) 기업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승부수를 던졌다. 글로벌 온라인 가구·매트리스 기업인 지누스를 8947억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창사 이후 역대 최대 규모의 인수합병(M&A) 금액이다. 전체 매출의 97%를 해외에서 올리는 지누스를 해외 진출의 전진기지로 삼겠다는 전략이다.

‘아마존 매트리스’ 도약대 삼아 해외로
현대백화점은 지누스 창업주 이윤재 회장 등이 보유한 지분 30.0%(경영권 포함)를 7747억원에 인수한다고 22일 밝혔다. 지분 인수와 별도로 지누스에 1200억원을 신주 인수 방식으로 투자하기로 했다. 인도네시아 제3공장 설립 및 재무구조 강화를 위한 용도다.

정 회장이 지누스 시가총액(이날 종가 기준 1조1692억원)에 맞먹는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 이유는 ‘글로벌’과 ‘온라인’을 동시에 충족하는 기업이라는 판단에서다. 지누스의 20만원대 주력 제품은 일명 ‘아마존 매트리스’로 불리며 해외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작년 말 기준으로 아마존 매트리스 판매 부문 1위이고, 미국 온라인 매트리스 시장 점유율이 30%를 웃돈다.

지난해 자산 기준으로 재계 21위인 현대백화점그룹은 2010년 7조8000억원이던 매출을 지난해 25조원 규모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랭하다. 2013년 19만원 선까지 근접했던 주가는 8만원(이날 종가 7만6600원) 밑으로 떨어졌다. 자본시장에선 현대백화점그룹의 전체 역량이 내수와 오프라인 유통에 치중돼 있다는 점을 저평가 요인으로 꼽는다. 이번 지누스 인수는 이런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정 회장의 ‘베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주목받는 정지선의 ‘한길 M&A’
유통 및 투자은행(IB)업계에선 정 회장의 일관된 M&A 전략이 또다시 진가를 발휘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성장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충족시키면서, 현대백화점이 사업 내용을 잘 아는 기업’만 인수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을 뚫을 정도의 글로벌 가격 경쟁력을 갖춘 지누스 인수도 이런 전략적 판단에서 내린 결정으로 풀이된다.

지누스는 지난해 매출 1조1238억원에 743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지누스의 매출은 해외와 온라인 비중이 각각 97%, 80%에 달한다. 현대백화점그룹의 e커머스 전략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구조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신세계 롯데와 달리 특정 카테고리에 특화된 전문몰을 강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의 이런 전략은 한섬 인수를 통해 효능을 증명한 바 있다. 한섬은 백화점 매장을 통해 안정적으로 수익을 확보하면서 재원을 온라인 판매를 늘리는 데 투자했다. 지난해 한섬 매출(1조3874억원) 중 20.8%가 온라인에서 나왔다. 영업이익률도 2018년 7%에서 지난해 11%로 상승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가구·인테리어·건자재 시장에서도 같은 성공 방정식을 적용하고 있다. 이에 힘입어 현대리바트와 현대L&C의 합산 매출은 지난해 2조5166억원을 기록했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리빙 부문 계열사들과의 협력을 통해 지누스의 취급 품목을 매트리스 외에 거실, 홈오피스, 아웃도어 등 일반가구까지 확대할 것”이라며 “미국 등 북미 중심의 지누스 사업 구조도 유럽 및 남미, 일본 등으로 넓혀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지누스 인수를 계기로 현대백화점그룹은 ‘2030 비전’ 실현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 정 회장은 지난해 그룹 매출을 2020년까지 4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2012년 한섬 인수 이후 현대백화점그룹이 지누스를 포함해 M&A에 쏟아부은 투자액은 2조2508억원에 달한다.

IB업계 관계자는 “지누스 매각은 이윤재 회장이 경쟁 입찰을 하지 않고 정 회장과의 독대로 성사된 것으로 안다”며 “지난해 한샘 인수에 실패한 것이 현대백화점에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고 평가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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