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힘든 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어서다. 최근 인터뷰한 이승훈 링글 공동대표가 그런 사람이다. 인턴으로 일해 쉽게 적응할 수 있었던 컨설팅펌 대신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입사했고, 자신의 성향과 학교 분위기가 정반대인 스탠퍼드 MBA(경영전문대학원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돈이 없어야 머리를 쓰게 된다"며 링글 창업 초기 일부러 최소한의 자금만 투자 받고 '배고픈 창업자'의 삶을 살기도 했다.
힘든 길이었지만 이 대표는 항상 목적지에 도착했다. 시작하면 끝을 봐야하는 그의 성향이 도움이 됐다. 매주 8시간씩 세미나를 했던 경영학회에 3년 간 거의 빠지지 않고 참여했고, 기업 재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약 7개월 만에 미국 회계사를 땄다. 길지 않았던 게임 스타트업 인턴 근무 시절 650페이지 넘는 실리콘밸리 벤치마킹 보고서를 작성, 무료로 공개한 것은 지금도 업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다. 창업 후 현장의 목소리를 듣겠다는 일념으로 1000명 넘는 고객을 일일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최근 이 공동대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링글의 서비스 개선에 쏟고 있다. 링글은 이 공동대표가 스탠퍼드 MBA 동기인 이성파 공동대표와 함께 2015년 창업한 글로벌 교육 스타트업으로 해외 명문대 튜터로부터 화상으로 1:1 고급 영어 수업을 받는 서비스가 특징이다. 링글은 올해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한 고객 맞춤형 서비스 고도화 △10대 대상 영어 교육 서비스 정식 출시 △웨비나의 구독 서비스 전환 등에 주력할 계획이다. 이 공동대표는 "링글과 함께 끝까지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 공동대표가 말하는 '끝'은 어디일까. 그는 전 세계 사람들이 링글 튜터들에게 영어 뿐만 아니라 수학, 과학 등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수강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라고 했다. AI 등 첨단 기술과 해외 명문대생 튜터의 능력이 결합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게 이 공동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링글을 중간에 팔리는 스타트업이 아니라 구글, 아마존처럼 '인수 주체'가 되는 영속력 있는 회사로 키울 것"이라며 "한국 청년들이 글로벌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터전을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처음 온 건 2014년 스탠퍼드 경영전문대학원에 입학했을 때입니다. 졸업하기 전인 2016년까지 있었죠. 2019년 하반기 링글 미국 법인을 설립했습니다. 작년부터 1년의 60%는 미국에 체류하려고 합니다.”
▶미국에 법인을 만든 이유는요
“튜터 선발을 강화하려는 목적입니다. 두 번째는 글로벌 서비스를 위해서죠. 고객 분포를 보면 75%는 한국, 25%는 해외입니다. 한국인 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유럽 고객들도 들어오고 있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 법인을 둔 이유는 단순 교육 서비스 회사가 아닌, 테크 중심의 교육 솔루션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실리콘밸리에서 나오는 여러가지 기술트렌드 등을 직접 경험하며 겪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실리콘밸리 테크(tech)회사 출신 분들을 모실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있었죠. 실리콘밸리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테크 기반의 교육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외국인 고객들이 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미국, 영국 명문대 출신 튜터들이 전 세계 사람들이 쓰는 영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 대화의 주제도 글로벌 이슈입니다. 훌륭한 튜터, 그리고 학습을 구현하는 ‘기술’이 있으면 전 세계 사람들의 원하는 콘텐츠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통해서 수학과 과학 교육도 하지말라는 법이 없죠.”
▶본사도 해외로 옮길 계획인가요.
“한국이 정치적으로 불안한 국가도 아니고, 서비스가 괜찮으면 한국에 본사가 있어도 미국에서 충분히 투자받을 수 있습니다. 나중에 본사를 미국으로 옮길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글로벌 서비스를 하는 게 우선이죠.”
▶한국인 주재원들도 링글을 많이 쓰는 것 같아요.
“해외에 계신 한국분들은 영어를 쓸 기회는 있는데 틀린 영어를 지적해주지 않죠. 그리고 해외 고객들 간의 네트워크 구축도 지원합니다. 오는 5~6월에 실리콘밸리 지역 고객 대상 행사를 개최하려고 해요. 서로 경험도 공유하고 자극도 받는 거죠. 언어는 동기부여가 중요하거든요.”
“서비스 고도화입니다. 현재 서비스는 크게 △튜터와의 대화와 피드백 △수업내용 MP3와 스크립트를 통한 단어와 문장 진단 △무료콘텐츠(웨비나)로 구성됩니다. 스크립트 관련해서 ‘이런 단어를 많이 쓰시네요’ 정도의 분석과 튜터들이 평가한 점수를 제공하는데요. 이 분야를 크게 업그레이드하려고 합니다.”
▶고객이 영어를 말하는 방식에 대한 분석을 강화하겠다는 거네요.
“네. 그동안 김주호 KAIST 전산학부 교수님(킥스랩 운영)을 6개월마다 찾아뵙고 유저들의 스크립트를 통해 어떻게 서비스를 고도화할 수 있을지에 대해 조언을 구했죠. ‘휴먼 어댑티드 러닝’ 방식으로 연구를 했고요, 유저들의 영어학습을 평가하는 진단모델은 만들어놨습니다. CAF라고 C는 ‘Complexity’, A는 ‘Accuracy’, F는 ‘Fluency’입니다. C는 다양한 구문, A는 정확한 문법, F는 유창함을 뜻합니다. 올해는 유저가 이야기한 스크립트를 갖고 CAF 모델을 돌려서 영어 실력을 입체적으로 진단할 예정입니다. 과거 5년 정도 링글을 통해 공부하신 분은 5년 치 진단 결과가 나올 수 있어요.”
▶진단 결과를 튜터 선정에도 활용할 계획이라고요.
“네. ‘디스트리뷰티드 리더십’입니다. 다채로운 영어를 구사하기 위해선 다양한 튜터들로부터 배울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계속 튜터가 바뀌면 학습의 연속성이 떨어지죠.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 여러 명의 튜터가 한 고객을 ‘팀’처럼 가르치는 서비스를 구현하려고 합니다. 수업 정보가 그 팀에 속한 다른 튜터들에게도 가는 거죠.”
▶서비스 시행을 위해 AI와 빅데이터 기술이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마침 김주호 교수님이 연구연가 기간라서 미국 법인으로 모시기로 했습니다. 서비스 고도화를 위해서죠. 올해 2분기부터 CAF 서비스 베타버전이 나올 것이고 3분기나 4분기에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출시할 겁니다.”
“아직 갈 길이 멀죠. 유저 확대를 위해 10대들을 위한 서비스도 출시할 계획입니다. 자녀를 둔 기존 고객들 사이에서 ‘아이들용 서비스도 있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거든요.”
▶초, 중, 고등학생 대상 서비스군요. 언제부터 시작할 계획인가요.
“‘링글틴즈’라는 10대를 위한 서비스 베타버전을 30개 미국 가정에서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이 수업을 듣고 주는 피드백을 받고 있어요. 오는 4~5월엔 대상을 200~30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고요. 처음 50명, 향후 200명으로 한정해서 1:1 화상 영어를 시작하고, 올해 하반기엔 정식 서비스를 출시할 예정입니다.”
▶여러 명이 보는 웨비나 등과 관련해서도 업그레이드를 준비 중인가요.
“네.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일부 유료화를 진행할 계획입니다. 5000원 이하 금액을 책정할 계획입니다. 인터뷰나 발표 준비 같은 것, 미국 문화나 이민 등 유저들의 관심 분야에 대해 풍부한 콘텐츠를 내놓을 계획입니다. 글로벌 시장에 관심이 많은 분들께 도움이 될 겁니다.”
▶서비스 고도화, 고객확대, 콘텐츠 구독모델에 대한 도전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현재 링글 유저들은 몇 명 정도 될까요.
“유료수강권 가진 분이 1만5000명 정도입니다. 유료 유저는 2016년 이후 매년 2~3배 증가하고 있습니다.”
▶링글 팀은 어떻게 구성이 돼 있나요.
“한국에 정규직 50명 정도 있고요, 미국에 6명이 일합니다. 일단 CEO 등 ‘C’를 쓰지 않아요. 저도 직함을 CEO라고 표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원 뽑는 방식이 특이합니다. 일단 조직의 장 ‘총괄’분들은 대부분 5~10년 이상 오래 알고 지낸 분들입니다. 창업자와 함께 의사결정을 하는 분들인데 제가 그분들에 대해 이해하고 있지 않으면 쉽지 않으리라 생각했어요. 예를 들어 커스터머 총괄은 2008년 BCG(보스턴컨설팅) 어소시에이트 입사 동기입니다. 콘텐츠 총괄도 BCG에 같은 날 입사한 분이고요. 개발 총괄은 저랑 동아리 함께했던 친구고 UX 총괄은 링글 유저였어요. 그리고 총괄분들은 오래 전부터 서로 알고 지내기도 했습니다.”
▶잘 알던 분들을 임원(총괄)로 임명하면 어떤 장점이 있나요.
“회사가 계속 성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도 ‘총괄들이 열심히 안 한다’라고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 회사의 서비스나 전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죠.”
▶총괄들을 받치는 중간 직원 채용도 특이한가요.
“3~7년 차 직원 중엔 링글 유저 출신이 많아요. 링글 이용해서 MBA를 지원했거나, 졸업하고 링글을 썼던 분들이 대부분이죠. 주니어들은 인턴으로 주로 선발합니다. 연말연초에 8000만원 정도 상금을 걸고 ‘링글의 문제점과 UX 관점에서의 제안’ 등을 주제로 공모전을 합니다. 지난해 1회 공모전 출신이 3~4명 일하고 있습니다. 올해 3회 공모전하는데 4~5분 정도 선발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미국 법인에서 직원 채용은 쉬웠나요. 요즘 인력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던데요.
“튜터 중에서 선발했어요. 미국 법인 직원은 콘텐츠를 만들어야 하거든요. 수업을 직접 했던 사람이 아무래도 좋죠. 링글만의 채용 문화와 시스템을 갖춰나가고 있습니다.”
“창업보다는 경영학에 관심이 컸어요.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01학번으로 입학해서 경영학과로 전과했죠. 그리고 2008년에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 입사했습니다.”
▶왜 전략컨설팅펌을 선택하셨죠.
“그때 사람 많이 안 뽑고 남들이 가고 싶어 하는 곳에서 일하고 싶었어요(웃음). 해당하는 직군이 세 개였어요. 투자은행(IB), 사모펀드(PEF), 전략컨설팅이죠. 이 중에 가장 팬시(fancy)하고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곳이 컨설팅이라서 컨설팅펌 입사를 위해 힘썼어요. 경영전략학회에 들어가서 2~3년 동안 컨설팅을 팠죠.”
▶학회는 어떤 식으로 진행됐죠.
“경영 사례를 공부하고 토론하고 전략을 제시하고 서로의 전략을 비판하고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학회였어요. 한 주에 한 번 모여서 여덟 시간 이상 했어요. 학회를 3년 가까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제가 원래 한 우물만 파는 스타일입니다. 주구장창 학회만 열심히 했어요.”
▶학회에 대학생활을 바친 거네요.
“제가 성장을 위해 할 수 있는 건 열심히 하는 스타일입니다. 일을 찾아다니는 부류죠. 학회를 하면 계속 무언가를 열심히 할 수 있으니까 좋았어요. 회사를 분석하는 게 재미있었고요, 그게 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심 있는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게 즐거웠고, 또 학회 선배들이 오셔서 가르쳐주는 환경이 좋았죠.”
▶전역하고 복학하기 전까지의 기간에 미국회계사(AICPA) 자격도 땄다고요.
“네. 경영 케이스 분석할 때 재무제표가 나오면 항시 피하곤 했어요. 잘 몰랐거든요. 경영학을 전공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컨설팅을 하고 싶어하는 학생으로서 재무제표를 만나면 오히려 반가워하고, 재무제표 속 정보를 잘 분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대 후에 AICPA 를 보기로 결정했죠. 꼭 회계사를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닌데, 회계사 만큼 재무제표를 분석할 수 있는 역량을 기르고 싶었어요.”
▶준비 기간이 짧았네요.
“네. 그렇지만 하루에 12시간 이상 공부했어요. 그리고 AICPA는 한국 회계사 시험과 달리 네 과목을 원하는 날짜에 하나하나 볼 수 있어서 조금 더 유리했죠. 합격 날짜를 앞당길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이었죠.”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인턴을 했었어요. 아는 분들이 많아서 ‘내 힘으로 일어섰다는 이야기를 떳떳하게 못 할 것 같다’라는 생각을 했죠. BCG는 인터뷰 때 회사에 대해 좋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낯선 땅으로 가자고 결심했습니다.”
▶BCG에선 주로 어떤 산업을 담당하셨나요.
“저는 2년씩 다양한 산업을 돌았어요. 전자, 정보기술을 오래했는데, 금융보험, 중공업, 건설, 플랜트, 조선, 소비재도 봤어요. 시키는 대로 하다보니까 그렇게 됐죠.(웃음)”
▶대학생 시절 꿈꾸던 생활이던가요.
“정말 좋았죠. 베인에서 인턴 할 때 사무실에서 일하는 게 좋고 더 있고 싶어서 집에 일부러 늦게 갔거든요. 명함에 컨설팅펌이 새겨지는 것도 상상했었고요. 상상이 현실로 실현된 거잖아요. BCG가 내 명함인 게 뿌듯했습니다. 하고 싶었던 일을 원 없이 했어요.”
▶그렇게 만족스러운 직장에서 왜 나오셨어요.
“전 글로벌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 대기업들의 해외 진출 전략, 구글 등과의 경쟁 전략을 짜는 게 보람 있었죠. 3-4년 차 정도 되니까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컨설팅 IB 로펌 다 고객을 대리하는 ‘대리인’이잖아요. 그리고 당시에 미국에선 페이스북 드롭박스 에버노트 에어비앤비 등이 세상의 주목을 받을 때였어요.”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유명 스타트업 창업자들과 제가 일한 시간은 비슷할 텐데, 창업자들은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저는 클라이언트의 일을 해결하고 있다는 차이가 있었죠. 내가 빛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주목받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회복지학과에서 경영학과로 전과하기도 했고요. 미국의 유명 창업자들이 멋있었던 게 경영학적으로 경영하는 데 사회복지학적으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세상의 사람을 연결해서 열린 세상을 만든다’ 등의 문구가 대표적이었죠.”
▶그때 창업을 생각하셨나요.
“아니요. 그때까지만 해도 메타플랫폼의 셰릴 샌드버그 COO(최고운영책임자)처럼 세계적인 스타트업에서 창업자와 함께하는 역할을 생각했어요. 이름있는 스타트업에 들어가서 더 큰 회사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요. 그래서 MBA를 떠올렸고 스탠퍼드를 갔습니다.”
“저는 모험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독특한 사고를 하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미국 동부 대학들과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생각해보니, 싫더라고요. 그래서 네트워킹에 약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못하는 제 약점이 가장 잘 드러나는 서부 스탠퍼드에 가서 약점을 극복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서부는 서울이랑 날씨부터 해서 참 다른 곳이죠.”
▶실리콘밸리가 서부에 있는 것도 영향을 줬겠네요.
“네. ‘스탠퍼드로 가면 뭐라도 보이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습니다. 전형 과정도 좋았어요. 다른학교는 미래와 어떻게(how)를 물어보는데 스탠퍼드는 ‘과거’와 왜(why)에 대해 질문하더라고요. 제 과거를 돌아보니까 어떤 게 중요한지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2014년 6-7년 차에 BCG를 그만두고 스탠퍼드로 왔습니다.”
▶스탠퍼드 입학 전 잠깐 인턴도 하셨다고요.
“사실 스탠퍼드에서 본격적으로 공부하기 전에 잠깐 게임 스타트업 ‘데브시스터즈’에서 인턴을 했어요. 게임 쿠키런, 킹덤 등으로 유명한 회사고요. 공동대표님이 스탠퍼드 MBA 인터뷰 심사위원이라서 인연이 이어졌죠. 신의 한 수였어요. 제가 컨설팅을 주로 했던 건 제조업, 대기업이었죠. 스타트업에선 게임이란 하나의 상품을 만드는 전 과정을 다 봤습니다. 그리고 컨설팅펌과 달리 개발자, 디자이너분들을 다 만났어요.”
▶데브시스터즈에선 어떤 일을 하셨어요.
“IPO 전략을 하고 싶었는데,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벤치마킹하는 일을 했습니다. 데브시스터즈가 글로벌 회사를 지향하고 있었거든요. 저한테 스타트업의 코어를 알려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넷플릭스 페이스북 드롭박스 등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목표부터 다르죠. 한국 기업들은 ‘글로벌 1등, 연 매출 30% 성장, 5위권 진입’ 이런 게 비전이잖아요. 페이스북은 ‘전 세계 사람들 연결’, 에버노트는 ‘메모를 통해 전 세계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게 하겠다’, 넷플릭스는 ‘당신이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보여주겠다’ 이런 거였죠. 페이스북의 예를 들면 저커버그부터 말단 직원까지 ‘저는 연결하고 있습니다. 좋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정말 하나의 제품을 미친 듯이 파더라고요. 그리고 엔지니어의 중요성도 깨닫게 됐습니다. 제조업에서는 기획, 설계, 생산이 모두 분리돼 있는데, 정보기술(IT) 스타트업에서는 이 모든 역할을 엔지니어분들이 다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20명 30명 있는 작은 스타트업에 들어가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스탠퍼드 생활은 기대한 대로였나요.
“저는 스탠퍼드에서 제가 변하는 걸 상상했는데, 그래도 됐습니다. 스탠퍼드는 1년이 3쿼터로 2년 6쿼터제입니다. 첫 쿼터엔 종일 학교에 올인했고요. 두 번째 쿼터 때 공동창업자인 성파님(이성파 링글 공동 창업자)가 창업 아이디어를 냈죠.”
▶왜 영어였나요.
“저는 스탠퍼드에서 ‘문제해결’이 창업이라는 걸 배웠어요. 실리콘밸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죠. 저는 ‘영어는 나의 문제인데, 나의 문제에 도전해보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워낙 창업 ‘뽕’ 맞은 동기들이 많아서요. ‘한 번 해보자’ 생각했죠. 그래서 한국에 있는 전 직장 후배들한테 원어민 MBA 등을 연결해주면서 창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기 시작했어요.”
▶튜터 모집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공동창업자인 성파님이 전단에 초콜릿 붙여서 기숙사를 돌았죠. 스탠퍼드 튜터를 처음에 8명, 나중엔 20명까지 모았어요. 강의료는 다 사비 털어서 줬죠. 그런데 미국 서부와 한국의 시차가 애매하더라고요. 차라리 동부가 시간대가 맞더라고요. 마침 하버드에 다니는 공동창업자의 지인이 기숙사에 전단을 붙여줬고요, 본격적으로 하버드 튜터가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모집이 더 수월하더라고요. 스탠퍼드는 공대가 강하니까 코딩 등으로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는데, 하버드는 인문 사회계열이 강하잖아요. 강의하며 돈 벌려는 수요가 있더라고요.”
▶법인은 언제 세웠죠.
“1학년 마치고 한국에 가서 법인을 세웠어요. 에이비앤비 창업자한테 조언을 구했는데, ‘사업에 집중할 수 있는 곳에 회사를 세우라’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고객 100명은 가능한데, 1000명 가는 게 어렵고, 1만명, 10만명은 진짜 갈수록 어렵다. 하지만 10만명 넘으면 조금 더 수월해진다’라면서 ‘글로벌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시점에 미국으로 오라’고 하더라고요. 2학년 때는 시간이 좀 더 남아서 아침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수업 듣고 5시부터 자정까지 도서관 가서 창업, 유료화 방안 등을 고민했습니다.”
“사람 구하는 게 어려웠죠. 한국의 엔지니어들이 ‘MBA 출신’에 대해 ‘돈 많이 받는 데로 갈 것이다’ 같은 불신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스타트업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크고요. 그래서 공동창업자, 공대 출신인 성파님이 소프트웨어 코딩 배워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결제 시스템도 넣었습니다. 2015년 6월 창업했고 유료화를 고민한 게 2016년 1분기쯤이에요.”
▶창업 초기자금은 어떻게 확보하셨어요
“스탠퍼드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인 2016년 8월까지는 정말 고생했습니다. 그래도 엔젤투자자분이 저희 손을 잡아 주셨어요. 제가 쿠키런 시절에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을 벤치마킹한 보고서를 무료로 구글에 올렸는데, 이게 계기가 됐습니다. 당시 페이스북에 계셨던 조성문 현 차트메트릭 대표님과 MBA 선배인 홍상민 넥스트랜스 대표님, 지영성 모카벤처스 대표님이 엔젤투자를 해주셨습니다. 원래 1억원 정도 생각했는데, ‘돈 생기면 쓰고 없으면 머리 쓴다’는 신조로 5000만원만 받았습니다.”
▶팀원 채용도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SK고용디딤돌이라고, SK가 인건비를 주고 무료로 스타트업에 6개월 간 인턴을 보내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그때 초창기 개발자 등 직원들이 몇 분 오셨죠. 정말 성실하게 해주셔서 정규직 전환하고 급여를 지급했어요. KAIST 가서 강연하고 인턴 채용하고, 알음알음으로 채용을 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엔젤투자를 한 번 더 받았고요.”
“네 마케팅하자니 돈이 많이 들어서 ‘추천’ 기반으로 2018년까지 성장했어요. 100명이 300명이 되고, 900명이 되면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당시엔 제가 수도권에서 결제하신 분들을 직접 찾아갔어요. 서비스 가이드를 드리고 링글을 최대한으로 이용하는 법에 대해 알려드렸죠. 그렇게 2018년까지 1000명을 만났습니다. 많이 배웠죠.”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고객을 만나면서 어떤 점이 좋았죠.
“20분만 설명 들으시면, ‘다른 영어 서비스’가 됩니다. 이런 걸 경험하신 분들이 다른 고객도 추천해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고객분들이 실망하셨을 때 바로 그만두지 않고 저한테 불편한 점을 알려주시더라고요. 예를 들어서 ‘수업 MP3 파일이 잘 안 들린다’라는 지적을 받고, 스크립트를 제공하기 시작했고요 이런 식으로 개선할 수 있는 건 개선했죠. 그때 ‘링글이 완벽하지 않지만 열심히 한다. 뭔가 도움을 준다’는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만난 고객 중에 팀에 합류한 분도 있습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서비스 개선도 계속 됐겠네요.
“창업 초기 어려웠던 서비스가 기술이 발전하면서 가능해지더라고요. 그때 깨달은 게 ‘튜터와 기술이 만나면 학습이 된다’는 겁니다. 튜터와 기술이 결합이 되면 꽤 저렴한 가격에 학습할 수 있는 모델이 나온다는 거죠. 튜터와 기술, 그리고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갖고 전 세계적인 관점에서 서비스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당연히 고객들을 만날 때죠. 한 시간 반 동안 차를 타고 수원에 가서 만나고 돌아오는 데 노을이 멋있었어요. 힘들었는데 좋았어요. 그리고 ‘링글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열심히 노력하시는 분들, 시간 쪼개서 영어공부 하시는 분들인데, 이런 분들의 시간, 이분들이 투자하는 수업을 허투루 하면 안 되겠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리고 2017년 하버드에 가서 일주일 정도 상주하면서 튜터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눈 것도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가 글로벌 비즈니스를 한다’는 생각에 벅찼습니다.”
▶회사가 알려지고 커지면서 좋은 점은요.
“회사에 꼭 모시고 싶은 분들을 모실 수 있게 됐어요. 2021년 초반부터 제가 생각했던 총괄직원들을 모실 수 있게 됐죠. 그분들이 오시니까 주니어들이 ‘드디어 배울 사람이 생겼다’면서 좋아했습니다.”
▶힘들 때도 많았죠.
“오늘이 항상 힘들어요. 팀이 커지고 고객이 많아지면 더 잘해야 합니다. 그런데 팀원 모두 다양한 배경을 갖고 있으니 하나로 몰입시키는 게 쉽지 않죠. 그런데 오늘이 제일 재미있기도 합니다.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이죠.”
▶어떻게 극복하십니까.
“일로 극복하려고 합니다. 컨설팅회사 다닌 것의 좋은 점이 ‘일에 대한 두려움, 야근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는 겁니다. 살면서 일이 많지 않았던 적이 없어요. 일이 많은 게 오히려 익숙해요. 그리고 ‘잘될 거야. 우리 팀은 최선을 다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합니다. 예전 MBA 수업 때 ‘가장 힘들 때가 의심할 때’라는 말을 들었어요. 팀이 열심히 안 하면 갈등이 시작되고 악순환이 됩니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뽑는 게 중요하죠. 저는 지금까지 의심한 적이 없어요.”
“‘데일리 리뷰’라는 게 있어요. 모든 팀원이 하루에 한 번 또는 이틀에 한 번 전사에 공유하고 인턴부터 총괄까지 다 봅니다. 저도 아침에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직원들이 남긴 리뷰를 보는 겁니다.”
▶데일리리뷰가 팀의 결속에 도움이 되나요.
“일의 과정과 직원들의 고민이 보입니다. 불안하다가도 리뷰를 보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그다음에 저는 ‘어떻게’를 고민해요. 저도 중요한 일들을 공유하면서 매일 씁니다. 사실 직원 10명일 때는 필요 없어요. 다 알고 원탁에 모이면 되니까요. 20명 넘어가면 리뷰가 필요하죠. 인턴이 써도 전사에 전파됩니다. 이런 게 스타트업 하는 재미죠. 만들어나가는 거요.”
▶링글을 어떤 회사로 키우고 싶으세요.
“끝까지 가고 싶습니다. '끝'은 전 세계 사람들이 링글 튜터들에게 배울 거 다 배우는 것이죠. 스타트업 중엔 중간에 팔리는 회사가 많죠. 저희는 '인수하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구글이나 아마존처럼 영속하는 회사요. 아마존 ‘데이 원(Day One)’처럼 하루하루가 ‘데이 원’인 상황을 꿈꿉니다. 결국 핵심은 '튜터와 기술'이 만나서 전 세계 사람들에게 학습, 교육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글로벌 회사인데 한국인도 있고 외국인 튜터도 있는, 실리콘밸리다운 일을 하는 그런 회사로 키워서 한국 청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싶어요. 글로벌 스킬을 한국에 뿌리내리는 데 일조해서 한국 청년들이 글로벌한 환경에서 자유롭게 일하는 터전을 만들고 싶습니다.”
▶사회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도 강하다고 들었습니다.
“네 소셜임팩트(사회공헌) 담당자를 선발했습니다. 그리고 영어 1:1 수업이 비싸게 느껴지는 분, 하지만 꼭 필요한 분께 ‘무료’로 제공하는 사업도 20분 대상으로 시작했습니다. 작지만 시작을 한 겁니다. 앞으로 정부 지원을 받아서 이런 사업을 확장할 수 있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창업 동기도 그렇고 지금 현재 링글을 정의할 수 있는 한 단어는 ‘문제해결’입니다. 교육적으로 빨리 성장할 방법, 링글 수업에서의 문제 등의 다양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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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밸리=황정수 특파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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