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한 달이 됐다. 유럽 국가들은 언제든 '무기'가 될 수 있는 러시아산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을 가속화한다'는 목표도 에너지 자립의 일환이다. 하지만 청정에너지 전환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일부 국가들이 오히려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며 '탈탄소'에 역행하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23일 "유럽연합(EU)의 최대 천연가스 및 석유 공급국인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각국 정부는 러시아산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려는 계획을 가속화하고 있다"면서도 "유럽의 원활한 에너지 전환은 어려울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이 미국처럼 '러시아산 화석연료 수입을 중단한다'고 선언하면 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유럽은 난방과 발전에 필요한 천연가스의 40%를 러시아에 의존한다.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 금수 조치를 꺼내들 경우 이미 오를 대로 오른 천연가스 가격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된다. 수급 불안이 이어지면서 지난 7일 유럽 천연가스 가격은 메가와트시(MWh)당 345유로를 기록했다. 사상 최고치다.
일부 유럽 국가들은 에너지 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해 급한 대로 자국 내 화석연료 사용량을 늘리고 있다. 청정에너지 도입에 적극적이던 독일이 대표적이다. 독일은 전력 공급에서 배제했던 일부 석탄 화력발전소를 예비로 배치해 필요할 경우 신속히 가동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주 독일 남부 도시 뮌헨에선 석탄 화력발전소 한 곳의 수명을 연장하기로 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이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화석연료로 회귀하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NYT는 "이번 위기(우크라이나 사태)는 유럽이 청정에너지에 더 빨리 도달하도록 자극했다"면서도 "러시아산 에너지를 대체하고 가격을 낮추기 위해 각국이 화석연료 감축 노력을 중단함으로써 청정에너지 전환이 후퇴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정에너지로 전환하는) 과도기 동안 에너지 비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국민과 정치인들이 삼키기 매우 어려운 약"이라고 했다. 결국 높은 에너지 비용을 감당해야 하는 국민과 표심을 의식하는 정치인들로 인해 화석연료 의존이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청정에너지 확대에 여전히 많은 시간과 비용이 투입되는 것도 걸림돌로 꼽힌다. 수소의 경우 저렴한 가격에 생산해 수송하고 저장하는 기술을 구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설명이다. 풍력도 마찬가지다. 독일 풍력터빈 제조사 지멘스가메사의 모르텐 필가르트 라스무센 최고기술책임자(CTO)는 "풍력 터빈에 적합한 지역을 찾고 건설에 필요한 허가를 얻는 데 너무 오래 걸린다"고 토로했다. 많은 청정에너지 업체들이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하지만 극심한 혼란과 비용 문제에도 '청정에너지로 전환한다'는 유럽 국가들의 의지 만큼은 확고하다. 정치 리스크 컨설팅 업체 유라시아그룹의 헤닝 글로이스타인 에너지·기후 담당 이사는 "EU는 이 문제에 수천억 유로를 쏟아부을 것이 확실하다"며 "일단 기차가 역을 떠난 후에는 되돌릴 수 없다"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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