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 미국 뉴욕 카네기홀.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2번을 선보였다. 당초 이날 무대에는 러시아 출신인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 피아니스트 데니스 마추예프가 설 예정이었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취소됐다. 대신 지휘자 야닉 네제 세겡과 조성진으로 출연자가 급히 변경됐다.
조성진처럼 대타가 무대를 더욱 빛내는 사례는 음악사에 종종 있는 일이지만, 행운의 여신의 옷자락을 잡는 것은 언제나 준비된 자들의 몫이었다. 첼로 주자였던 19세 토스카니니가 갑작스레 지휘대로 불려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은 대작 오페라 ‘아이다’의 악보를 모두 외웠던 덕이었다. 약관의 카라얀이 울름극장의 연습지휘자 자리를 꿰찼던 것도 대가들의 지휘법을 배우기 위해 자전거를 타고 400㎞를 달려가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클래식 음악사에 길이 남을 ‘대타 공연’을 거론한 것은 정계 입문 8개월 만에 대선에서 승리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깜짝 데뷔’를 한 지휘자와 비슷한 면이 많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당선인의 준비가 철저하길 바라는 바람도 마음 한쪽에 두면서….
대한민국이라는 오케스트라를 이끌 윤 당선인이 처한 상황은 결코 녹록지 않다. 조성진의 깜짝 공연은 세계 최고라는 빈 필이 받쳐줬기에 절반은 먹고 들어갈 수 있었지만, 윤 당선인 앞엔 ‘0.7%포인트 득표 차’를 마음속으로 승복하지 못하는 반대 세력이 버티고 있다.
객석의 매너도 기대하기 어렵다. 글로벌 세력 재편의 와중에 중국과 북한은 언제라도 예상을 뛰어넘는 거센 ‘파열음’을 낼 가능성이 높다. 악단 단원의 절반,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를 엇박자를 낼 사람들이 차지한 셈이다.
그러잖아도 부담스러운 데뷔 무대인데 당선인이 선보인 첫 소절도 매끄럽지 못했다. 당선인의 첫 작품은 ‘청와대 용산 이전’이라는 즉흥곡이다. 하지만 ‘신들린 듯한’ 파격은 독주자의 미덕일 뿐, 거대한 조직을 이끄는 지휘자는 법과 절차라는 ‘악보’에 충실해야 한다.
철저한 작품 연구와 실력에 기반한 단원 선발, 충실한 리허설을 바탕으로 해야 국민통합과 국운 융성이라는 하모니를 만들어낼 수 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연주할 곡이 발걸음 무거운 비가(悲歌)가 아니라 고난을 극복해 환희로 나아가는 위풍당당한 행진곡이 되길 기대한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