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보다 스토리" 콘텐츠에 꽂힌 패션기업들

입력 2022-03-24 17:27   수정 2022-03-25 01:41

패션기업 F&F의 김창수 회장은 요즘 ‘스토리’에 꽂혀 있다. 최근 드라마 제작사인 빅토리콘텐츠에 235억원을 투자했다. 벌써 여섯 번째 콘텐츠기업 투자다. 글로벌 무대에서 통하는 ‘K스토리’와 패션 브랜드를 결합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한섬이 얼마 전 스포츠 콘텐츠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왁티라는 스타트업에 투자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패션 스토리 회사로 진화하는 F&F
24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들어 콘텐츠 기업에 대한 패션기업들의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콘텐츠 대어(大魚)들이 넷플릭스 같은 글로벌 OTT들의 구애를 받고 있는 가운데 소규모 제작사에는 패션회사들의 구애가 이어지고 있다. F&F는 자회사인 F&F파트너스를 통해 빅토리콘텐츠를 포함해 콘텐츠 관련 기업만 6곳에 투자했다. 드라마 제작사인 채널옥트, 밤부네트워크, 와이낫미디어, 콘텐츠 유통 및 배급사인 바이포엠이 F&F 계열이다.

김 회장은 ‘스토리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부친이 삼성출판사 창업주다. ‘아기상어’라는 K콘텐츠로 전세계 시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더핑크퐁컴퍼니의 김민석 대표는 김 회장의 조카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MLB가 중국 시장에서 메가 히트를 기록한 데엔 중국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 영향이 크다”며 “해외 라이선스 브랜드를 가져와 대형 브랜드로 키운 F&F는 콘텐츠와 패션의 시너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섬은 올 하반기에 신규 골프웨어인 ‘랑방’을 출시하기에 앞서 왁티라는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왁티는 국제축구연맹(FIFA)·국제올림픽위원회(IOC) 등과 협력해 글로벌 국제대회의 역사와 관련된 라이선스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브랜드를 내놓기 전에 차별화된 스토리부터 탄탄히 만들겠다는 것이 한섬의 전략으로 풀이된다.
○브랜드 알리려면 콘텐츠는 필수
최근 패션 시장에선 옷 잘 입는 ‘일반인 인플루언서’와 이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스토리가 구매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A급’ 연예인 모델에 의존하던 과거 패턴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무신사가 대표적이다. 100여 명의 전문 리포터가 길거리 패션 피플의 사진을 찍어 올리는 ‘스트릿 스냅’은 대표적인 무신사 콘텐츠로 불리며 10~20대 이용자를 끌어모으고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무신사가 약 1000명의 전국 패션 피플을 집중 관리하고 있다는 것은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말했다.

LF와 삼성물산 등도 자체 콘텐츠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LF는 지난해 PD와 작가 등 방송 직군 인력을 충원해 현재 ‘라이브미디어커머스팀’에 10여 명의 인력을 배치했다. 라방(라이브 방송)과 유튜브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다. 헤지스닷컴에서는 웹드라마 ‘해지수’를 제작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도 적자를 내던 직물사업을 접는 대신 온라인 커뮤니티 공간인 ‘다이버’를 개설해 소비자와 직접 소통하고 있다. 콘텐츠 협력으로 자사몰을 강화하려는 전략이다.

메타버스가 차세대 플랫폼으로 부상하면서 영역 구분 없이 기업들의 콘텐츠에 대한 투자가 급증하고 있다. 신세계만 해도 2020년 260억원을 출자해 미디어 콘텐츠 자회사 마인드마크를 설립하고 제작사인 실크우드, 스튜디오329 등을 인수했다.

배정철 기자 bj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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