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놀자] 펌·염색은 화학반응…이집트선 진흙·식물 이용했죠

입력 2022-03-28 10:02  

옛날에 어렵게 아이를 가진 부부가 있었다. 이웃에 사는 마녀가 키우는 라푼젤을 먹고 싶다는 아내의 부탁에 남편은 몰래 라푼젤을 따다가 발각되고, 태어날 아기를 마녀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살아남게 된다. 시간이 흘러 아내가 딸을 낳자 마녀는 그 딸을 데려다가 라푼젤이라 이름 짓고 높은 탑에 가둬 기른다. 그러던 어느 날 근처를 지나던 왕자가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듣고 탑을 찾아온다. 그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라푼젤》은 1800년대 독일의 그림 형제가 모은 동화집에 수록된 작품으로, 라푼젤의 긴 머리카락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라푼젤과 달리 현실에서는 탈모로 스트레스받는 사람이 많다. 탈모의 원인 중 하나는 호르몬인데, 여성 호르몬과 남성 호르몬이 미치는 영향이 다르다. 여성 호르몬은 머리카락의 발육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어 임신 중에는 머리카락이 잘 자라고 빠지지 않는다. 야한 생각을 하면 머리가 잘 자란다는 속설이 터무니없는 낭설은 아닌 셈이다. 하지만 남성 호르몬은 머리카락을 자라게 하는 모유두의 활동을 멈추게 해 탈모를 일으킨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최초의 먹는 탈모 치료제는 효소의 작용을 억제하는 효과로, 테스토스테론과 반응해 탈모를 일으키는 물질이 생기지 않게 해준다. 요즘엔 나이 든 사람뿐만 아니라 젊은 남성 중에서도 탈모 치료제를 먹는 사람이 많은데 외모에 머리카락이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다는 의미기도 하다.

화학 반응을 이용해 머리카락을 아름답게 만드는 방법으로 펌과 염색이 있다. 머리카락에 웨이브를 주는 펌은 역사가 길어 이미 클레오파트라 시대에 알칼리성 진흙을 머리칼에 바른 뒤 막대기에 감아 붙였다가 씻어내는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이는 오늘날의 펌과 기본 원리가 거의 같다. 펌에 사용하는 약은 두 종류인데 하나는 펌 약이고 다른 하나는 중화제다. 이 중 펌 약이 알칼리성을 띤다. 중화제는 알칼리를 중화시키는 산성 물질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중성이며, 이름과 달리 중화 반응이 아니라 산화 반응을 일으킨다. 펌 약이 환원제로 작용해 결합을 끊어주면 중화제는 산화제로 작용해 새로운 결합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머리카락을 이루는 단백질 케라틴은 황(S) 원자를 포함하는 시스테인이라는 아미노산을 많이 함유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는 이유는 많은 단백질 가닥 사이에 시스테인 분자 간의 황(S)-황(S) 다리 결합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펌 약을 머리에 바르고 롤을 말아두면 기존의 다리 결합이 모두 끊어지고, 중화제를 바르면 롤로 말린 상태에서 다시 다리 결합이 만들어져 롤을 제거해도 그대로 웨이브가 유지되는 것이다.

머리카락의 색깔을 바꾸는 염색 또한 화학 반응을 이용한다. 머리카락은 크게 표피, 피질, 수질로 구성되는데 색깔을 결정하는 색소는 피질에 존재한다. 일반적인 염색제는 염모제와 산화제로 이뤄져 있다. 알칼리성 염모제는 머리카락을 부풀리고 표피의 큐티클 비늘을 열어 염료가 피질로 침투할 수 있게 해주며, 산화제는 멜라닌 색소를 탈색시키고 염료 분자가 커져 피질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만약 염료를 사용하지 않으면 탈색만 일어나기 때문에 남은 멜라닌의 색이 나타난다. 탈색을 여러 차례 하면 은발에 가까워지지만 그만큼 머리카락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산화 환원 반응을 이용하는 일반적인 화학 염색법과 달리 천연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헤나 염색이 있다. 헤나는 식물의 일종으로, 모표피 안에 염료를 침투시키는 것이 아니라 헤나의 주성분인 붉은 갈색 색소를 코팅하는 방식으로 작용한다.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이는 것과 비슷하게 모표피 밖을 색소로 감싸서 헤나 입자들이 케라틴과 단단하게 결합하도록 해주는 것이다.

머리에 웨이브를 만들거나 색깔을 바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노력에는 화학 반응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화학 반응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화학자라고 부른다면, 미용실에서 펌이나 염색을 하는 헤어 디자이너 또한 화학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화학을 이용해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학은 세상을 더 아름답게, 더 푸르게 바꿀 수 있다.
√ 기억해주세요
머리카락을 이루는 단백질 케라틴은 황(S) 원자를 포함하는 시스테인이라는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다. 머리카락이 일정한 모양을 유지하는 이유는 많은 단백질 가닥 사이에 시스테인 분자 간의 황(S)-황(S) 다리 결합이 존재해서다. 펌 약을 머리에 바르고 롤을 말아두면 기존의 다리 결합이 끊어지고, 중화제를 바르면 롤로 말린 상태에서 다시 다리 결합이 만들어져 롤을 제거해도 웨이브가 유지된다.

전화영 한성과학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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