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이 지독하게 아픈 상황이다 보니 독자의 마음도 동시에 욱신거리며 내내 안쓰러운 마음으로 함께하게 된다. 제발 니은이가 힘내기를 응원하면서 읽고 나면 마음이 한 뼘 더 자란 자신을 만나게 되는 소설이다.
니은은 혼자 견뎌야 하는 서울을 떠나 부산 이모 집에 갔다가 울산 고모 집으로 향한다. 거기서도 숨이 막혀 비어 있는 할아버지 집이 자리한 처용포를 찾는다. 할아버지의 친구들이 아직 살고 계신 처용포는 아빠가 자란 고향이고 니은이 가족과 종종 갔던 곳이다.
김형경 작가는 어린 시절 멱을 감았고, 다슬기가 지천이던 고향의 강이 어느 틈엔가 흰 거품이 끓고 나쁜 냄새가 나는 것에 충격과 상실감을 느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니은이 찾은 소설 속 처용포는 고래잡이로 유명했던 울산 장생포를 모델로 삼았다. 장생포와 처용신화를 접목한 허구의 공간 처용포는 공업단지에서 뿜어내는 공해에 휩싸인 채 고래박물관 조성을 위해 애쓰는 곳이다.
니은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석 달 전에 받은 주민등록증을 보며 자신이 ‘청소년도 청년도 아닌 시간, 미성년도 성인도 아닌 시간’ 속에 살고 있음을 깨닫는다. 자신은 부모가 없지만 고아라는 말도, 고아 청소년이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고아보다는 어른이 되기로 했어”라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한글교실에 다니며 글씨를 익히는 왕고래집 할머니는 열다섯 살에 시집을 갔고 고래잡이 명수였던 장포수 할아버지는 열여섯 살에 포경선을 탔다는 걸 알게 된 니은은 열일곱 살과 어른이 되는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고래잡이가 재개될 희망이 조금도 없는 가운데 처용포는 고래를 내세운 관광사업 구상에 분주한 사람들로 붐빈다. 사업자들이 번갈아 찾아와 장포수 할아버지가 수집해온 고래잡이 용품을 비롯한 갖가지 기념품에다 포경선까지 기증해줄 것을 요청한다. 생업을 강제로 포기당하고 아무런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상황에서 박물관에 박제되라고 권하는 사람들과 마주한 장포수 할아버지. 니은은 장포수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친구 나무의 사촌언니가 개최한 사진전시회에 갔을 때 니은은 “어른이 된다는 건 어떤 거예요?”라고 묻는다. 그때 사촌언니가 “아직 답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징징거리지 않기, 변명하지 않기, 핑계대지 않기, 원망하지 않기, 그 네 가지만 안 해도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하지”라고 답한다.
하루하루 마음을 회복해나가는 과정에서 니은은 ‘엄마 아빠가 내 고등학교 졸업식에 못 올 것이고, 대학에 입학하는 것도 못 보고 내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의 주어를 바꾸기로 결심했다. ‘나는 엄마 아빠 없이 혼자 살 것이다. 나는 혼자 힘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할 것이다’라고 읊조리자 마음속에서 이상한 힘이 생기며 등이 똑바로 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니은은 ‘어른이 된다는 것의 핵심에 자기 삶에 대한 밑그림이나 이미지를 갖는 것이 들어 있는 듯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비로소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을 느낀다.
나이가 들면 저절로 어른이 되는 것일까? 어른이 되기 전에 어른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 니은의 심정이 되어 《꽃피는 고래》를 읽다 보면 마음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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