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서방 세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책 《클렙토피아(KLEPTOPIA)》는 ‘더러운 돈이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는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책은 지난해 7월에 출간됐지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과 맞물려 최근 더욱 주목받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탐사특파원으로 40개가 넘는 나라를 넘나들며 취재 중인 톰 버기스는 추악한 자금 거래의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워싱턴DC부터 모스크바, 카자흐스탄, 콩고를 넘나들면서 ‘글로벌 부패 네트워크’를 추적해 공개한다. 은행, 비밀정보조직 그리고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 책에는 비양심적이면서도 파렴치한 그들의 실상과 은밀한 거래가 소개된다. 흥미진진한 소설처럼 읽히지만 조직적인 범죄가 얽힌 다큐멘터리 보고서다.
책의 제목인 ‘클렙토피아’는 ‘부패 관료(kleptocrat)’와 ‘유토피아(Utopia)’의 합성어로, 불법과 사기가 만연해서 부패 관료들에게 오히려 천국처럼 여겨지는 세계를 의미한다. 입이 떡 벌어질 만한 폭로가 이어지는 가운데, 네 명의 주인공이 등장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스위스 은행의 비밀을 우연히 발견한 영국 베이싱스토크 출신의 괴짜, 거대한 개인 제국을 건설하고 있는 전 소비에트 연방의 억만장자, 미스터리한 의뢰인을 두고 있는 캐나다의 정의로운 변호사, 그리고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보호를 받는 브루클린의 도둑까지, 저자는 탐사특파원다운 기질을 발휘하며 이들이 만들고 전달하고 숨기는 더러운 돈의 행방과 흐름을 추적한다. 세계 경제를 오염시키고, 독재자의 비위를 맞추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세력들이 벌이는 만행을 고발한다.
소비에트 해체 이후 러시아에서는 ‘올리가르히’가 등장했다. 이들은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등 과거 소련에 속했던 국가의 국유기업이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신흥재벌이다. 독재국가에서 막대한 부를 소유한 올리가르히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푸틴의 절대적인 지지 세력이 되거나, 아니면 범죄 혐의를 뒤집어쓰고 투옥되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국영 석유회사였던 유코스를 민영화해 3억900만달러에 지분 78%를 인수한 미하일 호도르콥스키는 러시아 최고의 부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푸틴의 파트너가 되지 않은 대가로 사기 및 횡령, 조세 포탈 등 7개 혐의로 기소됐고 감옥행을 면치 못했다. 반면 석유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푸틴의 최측근이자 믿을 만한 돈줄로 활약하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다.
크렘린궁에서 베이징, 짐바브웨의 하라레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의 리야드, 그리고 파리에서 트럼프의 백악관까지, 책은 종횡무진 국경을 넘나들면서 추악한 세력들이 어떻게 자신들만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결탁하고 단합하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의 추악한 거래로 인해 누구에게 어떤 피해가 돌아가고 있는지 생생하게 조명한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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