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수 없는 마크롱, 재선뒤 진짜 위기 온다

입력 2022-03-25 17:10   수정 2022-03-25 23:52

프랑스 엘리제궁(대통령 관저)의 주인이 다음달 10일 1차 투표와 24일 결선 투표를 통해 결정된다. 프랑스 대선에선 과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1·2위 후보자가 결선 투표에서 맞붙는다.



이변이 없는 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전진하는공화국 후보)이 재선에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극우 진영의 마린 르펜 국민연합 대표와 극좌파 장뤼크 멜랑숑 굴복하지않는프랑스 대표 등이 후보로 나섰지만 ‘현직 프리미엄’을 누리고 있는 마크롱을 뛰어넘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이라는 비극이 마크롱에겐 기회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이번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마크롱이 낙승하더라도 프랑스인들의 생활비 부담을 낮춰야 하는 과제는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마크롱, 굳건한 1위
마크롱 대통령은 이달 초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제대로 된 공약은 지난 17일에야 발표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시행된 여론조사에서 그는 25~30%대 지지율(1차 투표 기준)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1차 투표에서 마크롱은 29%의 지지율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 르펜(19%)과 멜랑숑(13%)을 가볍게 제치고 결선 투표에 오른다는 것이다.

경쟁 상대와 관계없이 결선 투표에서도 승리를 거머쥘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강력한 상대인 르펜(42%)과 결선에서 붙을 경우 마크롱은 58%의 지지율로 연임에 성공할 것이란 관측이다. 2017년 대선 당시 결선에선 마크롱이 66.1%, 르펜은 33.9%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지난달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마크롱의 지지율은 크게 상승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전까지 20% 중반대에 머물던 마크롱의 지지율은 러시아의 침공(2월 24일) 이후 이달 24일까지 4%포인트 뛰었다. 반면 다른 후보들의 지지율 상승세는 미미하다. 멜랑숑은 4위에서 3위로 올랐지만 지지율 상승폭은 1%포인트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르펜의 지지도는 2%포인트 상승했다. ‘프랑스판 트럼프’로 불리는 언론인 출신 에리크 제무르와 프랑스 공화당의 사상 첫 여성 후보인 발레리 페크레스의 지지율은 11%로 떨어졌다.

‘전쟁 중에는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처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위기를 맞은 프랑스인들은 마크롱에 다시 힘을 실어주고 있다. 그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직접 만나는 등 이번 전쟁의 중재자 역할을 자처한 게 표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다른 후보들은 마크롱을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도 못하고 있다. 프랑스 안보를 위해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마크롱을 걸고넘어지면 ‘반역자 이미지’가 씌워질 수 있어서다.

제무르 후보에겐 우크라이나 전쟁이 오히려 악재로 작용했다. “프랑스의 푸틴을 꿈꾼다”는 그의 과거 발언이 재조명되면서 지지율이 추락했다. 프랑스 정치 분석가 토마스 게놀라는 “우크라이나 전쟁 전에도 마크롱이 재선될 가능성이 높았는데 전시 대통령이 되면서 더 쉽게 대선에서 승리할 것”이라고 했다.

마크롱을 향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프랑스의 모든 이슈를 덮어버린 틈을 타 별다른 노력 없이 재선을 노린다는 것이다. 보수 성향의 제라드 라처 프랑스 상원의장은 “대통령이 선거운동과 토론을 하지 않고 아이디어 경쟁도 없이 재선에 성공하길 바라고 있다”고 비판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이번 대선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난 유령 캠페인”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이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면서 다른 후보자들은 밀려나고 의제를 펴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운도 따르고 있지만 마크롱은 재임 기간 분명한 성과도 냈다. 지난해 프랑스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7%로 52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업률은 7.4%로 2008년 이후 가장 낮다. 코로나19 대응에서도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았다.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근로자와 기업은 정부의 관대한 지원으로 정리해고와 직장 폐쇄로부터 보호됐다”며 “프랑스의 1차 백신 접종률은 영국과 독일보다 높고 코로나19 확산세도 최근 정점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진짜 위기는 당선 후?
마크롱은 이번 대선에서 ‘당신과 함께(avec vous)’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국민과 함께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하고 ‘강한 프랑스’를 세우겠다는 뜻이 담겼다. 그는 지난 17일 기자회견에서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 당신은 이미 알고 있을 것”이라며 ‘검증된 후보’라는 점을 내세웠다.

마크롱의 대표 공약은 법정 정년을 기존 62세에서 65세로 높이는 방식의 노동시장 개혁이다. 고령화 사회에 살고 있는 만큼 연금 수령 개시 연령을 늦출 계획이다. 앞서 그는 2017년 직종·직능별로 42개에 달하는 퇴직연금 체계를 단일 국가연금 체계로 바꾸려다 실패했다. 이 여파로 2019년 12월 노동계는 ‘마크롱 퇴진’을 외치며 총파업에 나섰다. 마크롱이 “교훈을 얻었다”며 “2017년과 다른 개혁을 원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에너지 자립도 임기 내 목표로 내세웠다. 유럽 최대 천연가스 수출국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키며 에너지 대란이 불거진 가운데 나온 공약이다. 마크롱은 “유럽 차원에서 방위비를 늘리겠다”며 “신규 원자력발전소 6기를 건설하고 해상 풍력발전에 투자해 외국에서 수입하는 에너지를 줄여나가겠다”고 강조했다.

르펜은 에너지 부가세율을 20%에서 5.5%로 낮추겠다고 했다. 프랑스인들의 최대 관심사가 ‘물가’라는 점을 공략했다. ‘다크호스’로 평가받는 멜랑숑은 프랑스 대통령제가 ‘군주제’와 다름없다며 정치 개혁을 약속하고 있다. 페크레스는 근로자들이 제한 없이 자유롭게 일하고 더 많이 벌 수 있도록 주 35시간 근로제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문제는 대선이 끝난 뒤다. 누가 당선되든 프랑스인들을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을 잡아야 한다. 지난달 프랑스 물가상승률은 3.6%로 2008년 이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고유가에서 촉발된 이른바 ‘노란 조끼’ 시위가 재연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마크롱은 각종 위기를 버팀목 삼아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재선 뒤 진짜 실력을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도 있다. 프랑스 여론조사 기관 BVA오피니언은 “전쟁이나 코로나19 위기가 사라지면 마크롱은 개혁 처리 문제에서 도전에 직면할 것”이라며 “그는 실력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라고 했다.

허세민 기자 se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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