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념 깬 '구리의 재발견'…"나노회로용 비싼 金 대체"

입력 2022-03-25 17:09   수정 2022-03-25 23:52

구리는 ‘천의 얼굴’로 불리는 금속이다. 전기전자 제품에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전도체다. 그러나 산화가 너무 잘 된다는 약점이 있다. 구리가 산화되면 나타나는 색깔 변화는 1900개에 이른다. 코로나19 사태에서 엘리베이터 버튼 커버 등으로 사용되면서 살균 기능을 갖고 있는 사실도 알려졌다.

초정밀 소재나 높은 신뢰성이 필요한 회로엔 구리 대신 금이 많이 쓰인다. 구리보다 전도성은 낮지만 산화가 잘 일어나지 않아 안전성이 높기 때문이다.

물질 내 원자들이 규칙적이고 한 방향으로 배열된 상태를 단결정이라고 한다. 다이아몬드, 루비 등 투명한 보석들은 보통 ‘천연 단결정’이다. 인공적으로 단결정을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물질 내 원자 배열이 한 방향이 아닐 경우 다결정이라고 한다. 세라믹이나 금속 덩어리들은 대체로 다결정이거나, 결정이 아닌 비정질 구조다.

구리 박막을 단결정으로 성장시키는 기술은 그동안 없었다. 박막을 성장시키면 표면이 거칠어지면서 단결정 구조가 깨지기 때문이다. 이를 ‘낟알경계(다결정 사이 경계)’가 생긴다고 표현한다. 구리는 산화될 때 낟알경계가 무려 1조 개 이상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세영 부산대 광메카트로닉스공학과 교수(사진)와 김영민 성균관대 에너지과학과 교수, 김성곤 미국 미시시피주립대 천체물리학과 교수 공동 연구팀은 구리 산화를 막는 방법을 이론과 실험으로 규명해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에 실었다고 25일 밝혔다.

연구팀은 단원자층 수준의 초평탄 구리박막을 구현하면 산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발견했다. 구리는 초평탄 단결정 박막으로 실현할 수 없다는 그동안 과학계 통념을 뒤집었다. 연구팀은 벽돌로 담을 쌓듯 원자 한 개 한 개를 쌓아올리는 ‘원자 스퍼터링 에피탁시(ASE)’ 장비를 썼다. 1조 개 이상 되는 구리 낟알경계의 결함을 없애면서 표면 거칠기를 0.2㎚(1㎚=10억분의 1m) 수준으로 제어했다. 기존에 보고된 구리 박막의 거칠기는 1.5㎚가 최하였다.

정 교수는 “표면 거칠기가 이 정도(0.2㎚)면 완벽에 가깝게 평탄한 게 아니라 그냥 ‘완벽하게 평탄하다’고 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산소가 구리 내부로 들어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계산한 결과 표면 거칠기가 두 원자 층 이상인 경우 침투가 쉽게 일어나지만 완벽하게 평평한 초평탄면인 경우 산소 침투가 안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실제로 연구팀이 개발한 초평탄 구리박막은 공기 중에 노출된 뒤 1년이 지나도 산화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기초연구 사업(중견연구자) 지원을 받아 수행됐다.

정 교수는 “초평탄 단결정 구리 박막은 일반 구리보다 전도도가 15% 이상 높다”며 “나노회로에 사용되는 금을 대체할 수 있어 경제적 부가가치가 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개발한 초평탄면 단결정 공정을 은, 알루미늄, 니켈, 철 등에 적용하는 연구를 추진할 예정이다.

고승환 서울대 교수 연구팀은 산화구리 나노와이어 박막의 물성을 제어해 소자로 제작하는 기술을 새로 개발했다고 이날 밝혔다. 나노와이어는 지름이 ㎚ 단위인 극미세선으로 트랜지스터, 메모리 등에 쓰인다. 연구팀은 산화구리 나노와이어 박막에 레이저를 정밀하게 쏴 아산화동 등 다양한 구리 기반 소자를 생산했다. 고 교수는 “물질 간 긴밀한 접합을 유지하면서 물성만 바꾸는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이 연구는 학술지 ‘나노 마이크로 레터스’에 실렸다.

이해성 기자 i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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