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스무 돌을 맞은 통영국제음악제가 화려하고 호쾌한 성인식을 치렀다. 지난 25일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음악제 개막 공연은 신임 예술감독인 작곡가 진은숙의 색깔과 비전을 엿볼 수 있는 호연이었다. 2026년까지 5년간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는 진은숙은 올해 음악제 주제를 ‘다양성 속의 비전(Vision in Diversity)’으로 정했다. 그는 공연에 앞서 열린 간담회에서 “음악 장르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애호가들에게 최상의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개막 공연은 진은숙이 직접 섭외한 우크라이나 출신 핀란드 여성 지휘자 달리야 스타솁스카(38)가 지휘봉을 잡았다. 첫 곡은 올해 음악가 상주 작곡가로 위촉된 1979년생 미국 작곡가인 앤드루 노먼의 ‘플레이: 레벨1’. 제목처럼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가 마치 게임하듯 제각기 또는 앙상블을 이뤄 연주하는 독특한 아이디어의 작품이다. 노먼은 이 작품으로 2016년 ‘작곡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그라베마이어상을 받았다. 진은숙은 “노먼은 젊은 세대의 가장 훌륭한 작곡가”라며 “듣기 힘들고 머리 아픈 현대음악이 아니라 발랄한 아이디어로 재치 있는 곡을 쓴다”고 소개했다.
불새 모양의 가운을 입고 등장한 지휘자는 재기발랄하게 통영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퍼커션, 팀파니 등 타악기들이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더블베이스 줄을 기타처럼 뜯고 퍼커셔니스트가 다채로운 음색을 뽑아냈다. 이번 음악제에서 노먼의 작품은 관악과 피아노 2중주, 현악 4중주, 폐막 공연에서 들려주는 관현악 ‘풀려나다(Unstuck)’ 등 모두 7곡이 연주된다. 모두 아시아 초연 또는 한국 초연이다.
현대음악에 이어 20세기 초 이고르 스트라빈스키가 작곡한 ‘불새 모음곡’이 흘렀다. 지휘자는 춤곡 특유의 빠른 박자에 변주가 잦은 작품을 역동적이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연주했다. 음량의 강약을 자유자재로 조절하다가 에너지 넘치는 피날레를 선사했다.
2부에선 올해 음악제 상주 음악가인 첼리스트 트룰스 뫼르크(60)가 협연자로 무대에 올랐다. 북유럽을 대표하는 세계 정상급 첼리스트인 뫼르크는 에사페카 살로넨의 ‘첼로 협주곡’,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세 대의 첼로를 위한 협주곡’ 등 30여 개의 신곡을 세계 초연하는 등 현대음악 연주자로 명성이 높다. 이날 공연에선 19세기 후기 낭만주의 명곡인 드보르자크의 ‘첼로 협주곡’을 선곡했다. 뫼르크는 군더더기 없이 명쾌한 음색을 뿜어내며 거장의 면모를 보여줬다. 적당한 세기와 속도로 첼로를 켜며 억지스럽지 않게 물 흐르듯 명곡을 해석했다. 앙코르 곡으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중 ‘사라방드’를 리듬감 있게 들려줬다.
21세기 노먼으로 시작해 18세기 바흐로 마무리한 음악 성찬이었다. 수준 높은 연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다양성이 흘렀다. 개막 공연부터 ‘진은숙표’를 분명하게 드러낸 이번 음악제는 다음달 3일까지 이어진다. 모든 공연은 유튜브에서 생중계로 볼 수 있다.
통영=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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