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7년 3월 6일 밤, 명성황후 시해(1895년) 장소로 잘 알려진 경복궁 안쪽 건천궁의 백열전등에 불이 밝혀졌다. 우리나라 최초의 전등이 점화된 것이다. 중국 자금성과 일본의 궁성보다 2년이나 앞섰다. 에디슨이 백열전등을 발견한 지 8년 만에 서울에 전등이 켜졌으니 당시로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조선정부는 외교 사절단(보빙사)의 미국 파견(1883년)을 계기로 전력산업의 발전방향을 직접 체험하고 큰 관심을 갖게 됐다. 갑신정변(1884년)으로 한 차례 연기됐으나 1887년 에디슨의 대리인인 프레이저로부터 전등설비를 구매해 건천궁에 750개의 백열전등을 밝혔다.
이렇게 전등은 일찍 밝혔으나 정작 전기를 본격 생산할 한성전기회사는 10여 년이 지난 1898년에 설립된다. 아관파천(1896년) 전후 중국, 일본, 러시아의 경쟁적 이권 개입에 고심하던 고종은 이를 탈피하고자 자신의 개인자금 10만원과 미국 차관 10만원으로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했다. 그러나 러일전쟁(1904년) 승리 후 일본은 노골적으로 이를 뺏고자 했고, 결국 통감 이토 히로부미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1909년 8월 일한와사㈜에서 인수하게 된다. 이후 1930년대 초 한반도 전역에 무려 63개의 전력회사가 영업할 정도로 전력산업은 양적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1945년 남북 분단으로 남한은 극심한 전력난을 겪게 된다. 해방 당시 발전능력은 북한 88.5%, 남한 11.5%였지만, 남한의 화력발전은 북한의 수력발전에 비해 효율이 떨어져 발전 실적은 95.7% 대 4.3%로 극명한 차이를 보였다. 1948년 5월 14일 북한은 남한으로의 송전마저 중단했다. 이후 미군정과 이승만 정부, 장면 정부를 거치면서 수력과 화력발전을 지속적으로 확충해 어느 정도 수요는 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기 3사(조선전업, 경성전기, 남선전기)의 지속적인 경영 악화로 구조조정이 꾸준히 논의됐다. 구조조정은 두 방향에서 논의됐다. 3사를 한 회사로 통합할지와 국·공영화 대 민영화가 쟁점이었다. 치열한 논쟁 끝에 장면 정부는 한 회사로의 통합과 민영화 방침을 세웠으나, 곧이어 등장한 군사정부는 1961년 7월 1일 3사 통합 및 국영화한 한국전력주식회사(한전)를 발족시켰다.(오진석 《한국 근현대 전력사업사》 1898~1961)
한편, 한전 발전부문 분할 후 20여 년이 지난 지금, 전력산업 패러다임 시프트를 맞아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구조 개편이 불가피해졌다. 2050 탄소중립에 따라 현재 37%(269.6백만CO2eq)인 발전부문의 이산화탄소를 없애야 한다. 그리고 재생에너지 중심으로 분산에너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2050년이 되면 전기 수요는 지금의 두 배(1215TWh)로 늘어나게 되는데 송전탑을 두 배로 늘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한 변동성이 높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4차 산업혁명과의 융합이 필수적이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클라우드,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이 적용돼 최적화된 에너지 사용을 자동으로 제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재생에너지 활용률도 높일 수 있다. 이러한 패러다임 시프트(탄소중립, 분산전원, 산업융합)에 적응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배전부문의 분할 및 민영화를 통한 경쟁적 전기요금체계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2월 16일자 DEEP INSIGHT 참조)
한전은 지난해 11월 탄소중립 비전 ‘ZERO for Green’을 선포해 2050년까지 석탄발전을 전면 중단하기로 했다. 문제는 석탄발전 퇴출을 ‘질서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즉 발전기별 퇴출 기준을 투명하게 정하고 그에 따른 직업 전환도 예측성 있게 해줘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발전 5사가 분리된 상태보다는 통합 후 진행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발전기별 퇴출 순서는 설계 수명, 경제성, 환경성(발전 단위당 이산화탄소 배출), 송배전 여건, 지역 편재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결정하되 그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 그에 따른 직업 전환도 마찬가지다. 협력사(비정규직) 직원의 직업 전환도 보장해주고 예측성을 높여줘야 한다. 석탄발전소 폐쇄에 따라 단기적으로는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를 건설하고, 재생에너지도 체계적인 육성을 위해 발전 5사에 분산된 재생에너지 사업을 통합 추진해야 한다. 즉, 재생에너지 사업은 석탄발전소 퇴출에 따른 직업 전환과 연계해서 체계적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각 근무자가 언제 어느 곳으로 옮기게 되고, 따라서 본인은 어떤 직업전환 교육을 준비해야 하는지 알게 해줘야 한다. 이렇게 투명하게 결정하고 예측성을 높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발전 5사를 통합해 퇴출과 전환을 체계성 있게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석탄발전소 퇴출과 LNG발전 신규 가동에 따른 전환배치가 소진돼 2024년부터 예상되는 일자리 쓰나미는 배전부문 분할 및 민영화에 따른 일자리 창출과 연계한 계획을 세워야 한다.
발전사 통합이 미래를 준비하는 또 하나의 계기성은 ‘신입사원부터라도 직무급제’를 도입하자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동일 노동 동일 임금, 동일 회사 다른 임금체계를 만들어줘야 한다. 기업이 부담할 수 있는 인건비 총액을 직무 난이도에 따라 세분화하고, 노동자는 자신에게 맞는 직무와 근무조건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정규직 없이 모두가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숙련, 여성노동에 대한 차별도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대재해의 많은 요인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소통 부족에서 일어나는데, 직무 선택을 자원해 입사할 경우 출신성분(소속신분)에 따른 배타적 집단 형성을 해소할 수 있다. 입사와 동시에 직무 구분 없이 일률적으로 정해지는 지금의 호봉제는 바뀐 생태계에 맞지 않는 임금체계라고 할 수 있다. 직무 간 이동성을 높여주기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해 고임금 업무로의 이동 욕구도 충족시켜줄 필요가 있다. 근무시간도 주 52시간 획일제에서 벗어나 요일별, 시간별 선택의 폭을 넓혀줄 필요가 있다. 이것이 따뜻한 복지이고 사회적 가치를 높이는 진정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탄소중립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통한 분산전원 실현, 이를 위해서는 전력산업과 4차 산업혁명의 융합은 피할 수 없이 같이 가야 할 길이다. 이 길을 가는 데 극복해야 할 에너지 전환과 직업 전환의 허들은 발전 5사 통합, 배전부문 민영화와 연계해 정의로운 전환과 미래 준비가 싱크로나이즈되도록 하는 지혜와 결단이 필요하다.
■ 김경식 고철(高哲)연구소장은
현대제철 기획실장을 지낸 에너지 전문가다. 서강대에서 화학공학, 연세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이 당진제철소 건설 시 홍보책임자로 일했다. 오너 경영인을 보좌하면서 ‘기업이 국력이고 복지다’라는 그들의 철학을 배우게 됐다. 이런 배움과 회사 업무를 통해 접한 에너지·환경·안전·노사·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등에 관심을 갖고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연구하고 있다. 제2차 에너지 기본계획 수립위원(2013), 국가기후환경회의 전문위원(2020)을 지냈으며 한국ESG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논문 ‘한전 민영화의 문제점과 대안’을 발표했고, 저서로는 《사람 중심 ESG를 말한다》(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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