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도 사랑을 알까…미술로 만나는 AI의 본질

입력 2022-03-29 17:15   수정 2022-03-30 00:16

중년 여성의 얼굴이 쇠로 된 몸뚱아리에 올라앉았다. ‘로보캅’을 닮은 이 기기에 다가가면, 어떻게 알았는지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춘다. 관람객이 웃으면 따라 웃고, 슬픈 표정을 지으면 같이 안타까워한다.

처음에는 인두겁을 쓰고 사람처럼 행동하는 로봇에 불쾌한 감정이 앞섰다. 하지만 눈가의 잔주름과 입술의 작은 움직임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로봇을 넋놓고 지켜보다 보니, 어느 순간 감정이 있을 리 없는 ‘쇳덩어리’에게서 공감의 정서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노진아 작가(47)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델로 만든 ‘나의 기계 엄마’는 이처럼 많은 관람객에게 특별한 감정을 안겨주는 조형작품이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AI)은 감정을 가질 수 있을까. 감정이 있는 AI는 인간과 어떤 게 다른가.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으로 규정하는 조건은 무엇인가. 서울 신림동 서울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튜링 테스트:AI의 사랑 고백’이 관람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AI 관련 주제로 열린 기존 전시에 비해 신기술을 적극적으로 접목하고 구체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 많은 게 이번 기획전의 특징이다.

노진아, 문성식, 박관우, 이덕영 등 11개 팀의 회화, 영상, 설치 등 9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노 작가의 ‘나의 기계 엄마’는 지난해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출품해 전시장에 기다란 줄을 만든 작품이다. 정교한 얼굴 조형과 표정으로 관람객에게 기계와 교감하는 느낌을 안겨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서강대에서 예술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작가의 공학적 전문성이 이를 가능케 했다. 대화형 로봇인 ‘진화하는 신, 가이아’는 반대로 인간의 지위를 위협하는 AI에 대한 공포심을 자극하는 작품이다.

박관우(32)의 ‘인간의 대화’ 연작도 주목할 만하다. 두 모니터에 나오는 인물이 서로 대화하는 형식의 영상인데, 대화가 자연스레 이어지는 듯하지만 자세히 들어 보면 내용이 모호해 맥락을 종잡을 수 없다. 두 사람이 하는 말 대부분이 사실 챗봇(채팅용 AI) 두 개가 서로 말을 주고받은 기록을 읽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AI의 대화 능력이 급속도로 인간을 따라잡고 있는 상황에서 인간과 AI를 구분하는 경계가 무엇인지를 탐구한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전시 제목인 ‘튜링 테스트’와도 일맥상통한다. 튜링 테스트란 1950년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개발한 시험으로, 기계가 얼마나 사람다운 말을 할 수 있는지를 측정해 사고 능력을 가늠하는 방법이다.

정승(46)의 ‘프로메테우스의 끈 VII’는 식물에서 얻어낸 여러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조형을 3D프린터를 이용해 형상화한 작품이다. 모양은 다소 기괴하다. 미술관은 “살아 있는 생물과 기계의 융합을 은유하는 작품”이라며 “사이보그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미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최근 미술계에선 이렇게 기계공학과 컴퓨터공학을 활용해 AI나 미래 세계를 그린 작품을 제작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한남동 리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컴퓨터 예술계의 젊은 대가 이안 쳉(38)의 전시도 이런 사례 중 하나다. 그는 게임 개발 도구인 게임엔진과 AI 기술을 이용해 자신이 상상한 미래 세계를 가상세계에 구현한다.

심상용 서울대미술관 관장은 “AI가 인간의 일상에 빠르게 침투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한 철학적 논의는 빈약한 상태”라며 “이번 전시가 AI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오는 5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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