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이번 2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은 일종의 ‘절충안’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해 전기료 인상폭을 제한하면서, 이미 예고된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 인상은 계획대로 실행했기 때문이다. 윤 당선인의 4월 전기요금 인상 백지화 공약과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한국전력의 적자를 모두 고려한 고육책이란 것이다. 하지만 정치논리로 전기료 현실화가 자꾸 불발되면서 올해 한전의 영업적자는 2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이 같은 경영 악화는 결국 정부 세금 지원 형식을 통해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정부는 작년 1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국제 유가 등이 하향 안정될 것으로 보고 연료비 연동제 도입의 적기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지난해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스텝이 꼬였다. 2020년 배럴당 평균 42.3달러였던 두바이유 가격은 지난해 64% 오른 69.3달러로 급등했다.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은 같은 기간 MMBtu당 4.4달러에서 18.6달러로 네 배 이상 올랐다. 이달 들어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의 영향으로 80달러 선을 돌파하며 폭등세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 유가의 벤치마크인 브렌트유와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는다.
이 같은 연료비 수직 상승에도 정부는 작년 2, 3분기와 올해 1분기에 이어 2분기에도 연료비 조정단가를 동결했다. 올 2분기엔 예외적으로 기준연료비와 기후환경요금이 인상돼 전기요금이 4월부터 오르긴 하지만 평소에는 연료비 조정단가가 동결되면 전기요금도 오르지 않는다.
정부는 전기료 억제 이유로 물가 안정과 코로나19 피해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대선과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표심에 영향을 주는 전기료 인상 결정을 쉽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란 관측이 많다. 이에 따라 한전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약 5조860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재무구조가 나빠졌다.
문제는 대선 과정에서 전기료가 정치 쟁점화됐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부의 4월 전기료 인상 계획은 “탈원전 정책의 실정을 덮기 위한 꼼수”라며 전기료 인상 백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코로나19가 안정될 때까지 전기료를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하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전기료 동결 조치를 이어갈 수 없다는 점을 인수위원회 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위는 최근 “이번 전기요금은 현 정부에서 결정할 사안”이라며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공약 불이행’이란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점은 부담이었다. 이에 연료비 조정단가만 동결하는 절충안을 받아들였다는 게 인수위 안팎의 분석이다. 한 관계자는 “기준연료비의 경우 작년 12월 한전이 이사회를 열고 약관 개정을 통해 확정했다”며 “이를 되돌릴 경우 더 큰 후폭풍이 생길 수 있다는 점도 감안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일부 국가는 전기료를 50% 이상 인상한 사례도 나오고 있다. 당장 선거 등을 의식해 땜빵식으로 요금 인상을 억제하면 결국 그 부담은 국민 혈세로 메워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지훈/정의진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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