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美 원전 해체' 시장 뚫었다

입력 2022-03-30 17:17   수정 2022-03-31 01:49


현대건설이 국내 건설사 최초로 미국 노후 원전 해체 시장을 뚫었다. 최근 소형모듈원자로(SMR) 수주에 이어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 진출을 위한 핵심 교두보까지 확보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원전산업 위축이 불가피한 여건 속에서도 원전 엔지니어 등의 핵심 경쟁력을 유지해온 노력이 빛을 발하고 있다는 평가다. 원전 건설에서부터 SMR, 원전 해체까지 ‘포트폴리오’를 구축함에 따라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운신의 폭이 한층 넓어질 전망이다.
300조원 원전 해체 시장 ‘첫발’
현대건설은 지난 28일 미국 원전기술 솔루션 개발 기업인 홀텍과 미국 뉴욕주에 있는 인디언포인트 원전 해체 사업의 사업관리(PM) 계약을 포함한 ‘원전 해체 협력 계약’을 맺었다고 30일 밝혔다. 지난해 11월 홀텍과 경수로형 소형모듈원자로(SMR-160 모델) 글로벌 독점 계약을 맺은 데 이은 두 번째 성과다.

현대건설은 이번 계약으로 부피감용(파쇄 소각 등으로 폐기물을 감소시키는 것)과 화학제염(약제의 화학 반응으로 방사능 오염을 저감시키는 일), 원자로 압력용기 및 내장품 절단 등 인디언포인트 원전 해체 작업 전반에 참여한다. 홀텍과 함께 세계 원자력 해체 시장에 진출하고 마케팅과 입찰도 공동으로 추진한다.


현대건설은 글로벌 원전 해체 시장의 높은 잠재력을 주목하고 사업을 준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전 세계에 지어진 총 442기의 원전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199기가 영구 정지 원전이다. 국내에선 고리 1호기와 월성 1호기가 영구 정지됐다. 반면 해체 작업을 마친 원전은 21기에 불과하다.

미국 컨설팅업체인 베이츠화이트에 따르면 세계 원전 해체 시장 규모는 2030년까지 123조원, 2031~2050년엔 204조원 규모로 급팽창할 것으로 예측된다.

원전 해체 경험을 가진 국가는 미국·독일·일본·스위스뿐이다. 현대건설은 이번 계약을 통해 선진 원전 해체 기술을 축적할 수 있게 됐다. 내년 5월 해체 발주가 예상되는 고리 1호기 등 국내 원전 해체 사업에서도 경쟁사보다 우위를 확보할 수 있게 됐다. 윤영준 현대건설 사장은 지난 24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국내 원전 시공 기술력을 토대로 SMR과 원전 해체, 해상풍력 등 관련 신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5년 와신상담…원전 기술력 유지
현대건설은 1971년 미국 웨스팅하우스와 함께 국내 첫 원전인 고리 1호기를 지었다. 이후 국내 원전 30기의 60%인 18기를 담당했다. 해외에선 2009년 12월 삼성물산과 함께 200억달러(약 23조원) 규모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1~4호기를 수주해 지난해 1호기를 준공했다. 하지만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전 세계적인 탈원전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현 정부도 탈원전 정책에 가세하면서 어려움에 직면했다.

현대건설 내 원자력사업단이 속한 플랜트본부는 코로나19 이후 해외 발주 물량 급감까지 맞아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그럼에도 플랜트본부 인력을 2018년 이후 1400명대를 유지해왔다. 원자력사업단은 신한울 1~2호기 등 기존 수주 물량 공사에 집중하면서 인력 수요가 줄면 플랜트 내 다른 현장에 배치하는 방식으로 원자력 기술 인력을 관리해왔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신규 수주가 없는 가운데서도 플랜트 사업부 내 현장 배치를 통해 고급 인력을 지켰다”고 말했다.

원전 수주 시장 전망은 밝은 편이다. 유럽연합(EU)이 지난해 말 그린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에 원전을 포함하는 규정안을 확정하면서 탄소배출 감소 및 기후변화 대응에 원전이 적합한 에너지 공급원으로 재조명받고 있어서다. 프랑스뿐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이 원전 건설을 확대하려는 이유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가스 의존을 줄이고 원전 확대를 원하는 동유럽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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