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는 예술과 기술의 결합이다. 케이스·스트랩의 소재와 디자인, 보석이 가미된 장식으로 손목 위 명품으로 재탄생한다. 하지만 진정한 ‘시계의 심장’은 아름다운 외관 안에 있는 무브먼트(동력장치)다. 무브먼트는 수백 개의 작은 부품을 섬세하게 조립해야 완성할 수 있다. 자체 개발할 수 있는 회사가 많지 않다.
에르메스는 패션에서 출발했지만, 시계 부문에서도 이름을 알린 브랜드다. 시계에 들어가는 부품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몇 안 되는 명품 브랜드다. 2012년 처음으로 자체 무브먼트를 선보였고, 최고급 가죽을 다루는 패션 브랜드로서 스트랩도 제작한다. 에르메스 워치가 올해 신제품 ‘아쏘 르 땅 보야쥬’을 포함해 새로운 제품들을 공개했다.
에르메스가 본격적으로 시계 제조에 나선 건 1970년대다. 에밀 에르메스가 사망한 후 사위이자 ‘4대 에르메스’로 불리는 로베르 뒤마가 가업을 이었고, 그의 아들 장 루이 뒤마가 시계 부문 자회사 라몽트르 에르메스를 1978년 설립했다. 시계를 손에 차는 데 쓰이는 스트랩은 수백만, 수천만원짜리 에르메스 가방에 사용하는 최고급 가죽을 썼다. 무브먼트 자체 개발 역량도 키웠다.
에르메스는 자회사 설립 후 무브먼트 공방과 다이얼 제조사, 케이스 제조사 등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명품 브랜드의 패션 시계가 아닌, 럭셔리 시계 제조사로 본격적으로 나서겠다는 취지였다. 에르메스는 여성용에 이어 지난해 남성용 스포츠 시계 ‘H08’을 새로 출시하며 상품군을 넓히고 있다.
에르메스는 세계 각국의 도시와 시간을 표시할 수 있는 세컨드 타임존을 아쏘 르 땅 보야쥬에 구현했다. 이를 통해 다른 나라와의 시차를 확인할 수 있다. 시계 바탕에는 상상 속 지도인 ‘승마 세계의 지도’가 양각으로 새겨져 있다. 에르메스가 매년 프랑스에서 주최하는 승마 행사 ‘소 에르메스’를 위해 프랑스의 그래픽 디자이너 제롬 콜리아르가 2016년 만든 지구본이다. 지도의 대륙마다 말과 기수를 표현하는 이름을 담았다.
아쏘 르 땅 보야쥬에는 두 가지 색상과 두 가지 버전이 있다. 플래티넘 케이스에 DLC(다이아몬드 성분을 포함한 특수카본) 코팅이 된 티타늄 베젤 버전, 그리고 스틸케이스 버전이다. 지름은 각각 41㎜, 38㎜다. 색상은 검정과 딥블루 두 가지다.
지난해 에르메스가 처음 선보인 남성용 시계 ‘에르메스 H08’은 딥 블루 바탕에 에르메스의 상징색인 오렌지색이 더해진 새로운 색상의 모델이 나왔다. H08은 우아하면서도 스포티한 느낌이 특징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예치금을 걸고 수개월을 기다려야 살 수 있을 만큼 인기를 끌었다.
케이프 코드 시계는 앙리 도리니가 1991년 디자인한 제품이다. 올해 신제품인 ‘케이프 코드 크레프스큘’에는 신기술이 집약돼 있다는 게 에르메스의 설명이다. 에르메스는 기술 혁신을 위해 2018년 스위스 전자 및 마이크로 기술센터(CSEM)와 회의를 열고, 반도체 재료인 실리콘 웨이퍼 소재로 시계를 만들었다.
노유정 기자 yjro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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