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는 출근 시간. 나란히 출근한 여의주 부장(김현숙 분)과 계빈 차장(임기홍 분)을 보고 막내 직원 김혜지(윤상정 분)는 말했다. "어머! 너무 좋은 자몽 샴푸 향기가 나요."
코를 킁킁대더니 이내 여 부장과 계 차장을 지목했다. 당황한 두 사람은 "왜 내가 쓰는 걸 따라 쓰냐"며 얼굴을 붉혔다. 이후 이들의 비밀 사내 연애는 공개 연애가 됐다.
SBS 드라마 '사내맞선' 속 한 장면이다. 드라마에서는 이 커플 외에도 사장 강태무(안효섭 분)와 직원 신하리(김세정 분)가 사내 연애 중이다. 얼굴도 보기 힘든 사장이 직원의 얼굴을 보러 수도 없이 사무실을 찾고, 부서 회식 자리에도 끼어들어 테이블 밑으로 연인인 직원의 손을 잡았다. 술 취한 또 다른 직원에게 이를 들켰으니, 여기도 비밀 연애가 공개로 바뀌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최근 드라마에서 사내 연애가 단골 소재로 등장하고 있다. '사내맞선' 외에도 기상청 직원들이 회사 내에서 겪는 다양한 일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기상청 사람들'이 방송되고 있고, 오는 22일 방송 예정인 tvN '별똥별' 역시 톱스타와 소속사 홍보팀 팀장 간의 러브라인을 예고했다.
사내 연애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들은 높은 인기와 화제성을 자랑하고 있다. 4.9%의 시청률로 출발했던 '사내맞선'은 최근 11.6%를 기록하는 등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기상청 사람들' 또한 6~7% 시청률을 꾸준히 유지 중이다.
'사내맞선'의 시청자인 30대 여성은 "사장과 직원이라는 관계 자체가 보기 어려운 경우라 더 재밌게 느껴지는 것 같다. 일하면서 알콩달콩 눈빛을 주고받는 모습이 자주 나오지만 사실 현실에서는 생계와 관련이 있는 직장 안에서 연애한다는 자체가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한 결혼정보회사가 미혼남녀 275명(남자 137명, 여자 138명)을 대상으로 사내 연애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10명 중 6명(63.6%)이 사내 연애를 꿈꾼 적이 있다고 답했지만, 이 사실을 공개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자는 전체의 17.8%에 불과했다.
사내 연애를 밝히고 싶지 않은 이유는 '회사에 소문이 나는 것이 걱정돼서'가 48%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이어 '업무적으로 불편한 상황이 생길까 봐'(28.4%),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11.3%) 순이었다.
사내 연애가 불러올 후폭풍을 걱정하는 경우도 많다. 직장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내 연애를 고민 중이라는 사연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그중에는 비밀 연애를 하다 발각됐을 때 인사상 불이익을 받게 될까 걱정된다는 사연도 눈에 띈다.
한 취업포털이 직장인 659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회사의 부당한 직원 해고' 관련 설문조사에서도 직장인이 가장 이해할 수 없는 해고 사유로 '사내 연애를 해서'(18.8%)가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31.8%)'의 뒤를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사내맞선'에서도 강태무, 신하리의 열애 사실을 알게 된 강다구(이덕화 분) 회장이 신하리의 팀이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를 중단시키고, "사표 내고 떠나라"고 말하는 등 해고를 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사규에 관련 규정이 없다면, 사내 연애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주긴 어렵다. 근로기준법 제23조는 사용자는 근로자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직, 감봉, 그 밖의 징벌을 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명시된 '정당한 이유'에 대해 대법원은 "사회 통념상 근로 계약을 계속할 수 없을 정도로 근로자에게 책임이 있는 사유"로 판시했다.
취업규칙에 사내 연애가 금지되며, 이를 위반할 시 징계받는다는 내용이 포함된 경우는 어떨까. 근로기준법 제96조는 '취업규칙은 법령이나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 대하여 적용되는 단체협약과 어긋나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취업규칙은 경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개인의 사생활까지 판단해 징계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단순히 사내 연애를 했다는 자체만으로 이를 회사의 경영 질서 및 업무와 직결시켜 징계 사유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다만, 사생활일지라도 업무상 차질을 초래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회사에 끼친 악영향이 중대할 경우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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