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밀턴은 2015년 미국에서 초연된 이후 많은 인기를 얻었다. 2016년 토니어워즈에서 11개 부문을 휩쓸었다. 그래미·퓰리처·에미상 등도 쓸어담았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백악관 무대에도 올랐다. 2020년 2월 기준 수익은 6억4900만달러(약 7719억원)에 달했다.
해밀턴은 지난해 11월 국내에 진출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디즈니플러스를 타고 한국 시청자를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원작자의 요청으로 미국사를 이해할 수 있을 만한 나라의 언어인 영어, 스페인어, 포르투갈어 자막만 제공됐다. 해밀턴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 해도 한글 자막이 없으면 제대로 감상하기 힘든 작품이다. 대부분의 노래 가사가 속사포 같은 랩인 데다 미국 건국사를 모르면 알 수 없는 내용이 많아서다. 일부 애호가들은 답답한 마음에 직접 한글 자막을 함께 만들어 공유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달 26일 한글 자막 서비스가 시작되자 뜨거운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 디즈니플러스가 제공하는 영상은 브로드웨이에서 2016년 공연한 무대를 찍은 160분짜리 작품이다. 미국 건국에 기여한 공로로 1호 재무장관이 된 알렉산더 해밀턴(다비드 디그스 분)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해밀턴은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지만, 총명한 머리와 뜨거운 욕망을 가진 인물로 승승장구한다. 훗날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의 오른팔이 된다.
공연은 힙합, 리듬앤드블루스(R&B) 음악으로 어렵고 지겨울 수 있는 미국 건국사를 속도감 있게 그려낸다. 뮤지컬이지만 힙합 콘서트를 감상하는 기분이 들 정도다. 주요 넘버(삽입곡)인 ‘마이 샷(My Shot)’은 강렬한 리듬과 랩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성스루(sung-through·대사 없이 노래로만 진행)’ 뮤지컬인 만큼 배우들이 공연 내내 랩을 해 감탄을 자아낸다.
단순히 미국 역사를 훑는 게 아니라 다양성과 저항 정신도 담았다. 특히 다양한 인종의 등장과 활약이 두드러진다. 무대 세트는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다. 주요 장면에서 회전 무대를 이용하는 정도다. 그래서 각 캐릭터가 속사포로 쏟아내는 말에 더욱 집중할 수 있다. 다만 작품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선 미국 건국사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있어야 한다. 영상을 보기 전 해밀턴과 건국사에 대해 검색해보면 도움이 된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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