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계부채 증가세를 억누르기 위해 은행들의 대출 경쟁을 막았던 금융당국도 올 들어선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사실상 폐기한 상태다. 가계대출 잔액이 오히려 감소하는 상황에서 은행별 대출 증가율을 관리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출 문턱이 낮아지면서 총량 규제에 막혀 대출이 꼭 필요한데도 돈을 빌리지 못했던 실수요자들에게는 희소식이 됐다. 다만 금리 상승기에 들어선 데다 개인별 DSR 규제가 올해부터 대폭 강화된 만큼 자신에게 적합한 대출 전략을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하고 있다.
대형 은행이 아무 조건 없이 대출 금리를 낮추는 일은 이례적이지만 최근 들어선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1일부터 하나원큐신용대출 금리를 0.2%포인트 낮췄고, 우리은행은 올 5월 말까지 신규 주택·오피스텔 담보대출과 전세대출 금리를 0.2% 포인트 추가로 깎아준다. 지난달 초부터 모든 대출 금리를 만기 종류별로 최대 0.12%포인트 인하한 신한은행은 지난달 25일부터 전세대출 금리도 0.1%포인트 더 내렸다. 케이뱅크는 최근 마이너스통장과 신용대출 금리를 상품별로 최대 0.4%포인트 인하해 약 한 달 만에 금리를 0.7%포인트 내렸다. 카카오뱅크도 최근 중신용자 대상 신용대출 금리를 0.5%포인트, 전·월세 대출 금리는 0.2%포인트 인하했다.
대폭 줄었던 대출 한도도 복원됐다. 시중은행들은 금융당국의 신용대출 억제 방침에 따라 지난해 8월부터 소득과 관계없이 1인당 5000만원으로 제한됐던 마이너스통장 한도를 최근 일제히 높였다. 하나·국민은행은 연소득 범위 안에서 최대 1억5000만원, 신한은행은 1억원, 농협은행은 2억5000만원, 우리은행은 3억원까지 내준다.
올 상반기 규제지역에서 집값 6억원이 넘는 주택에 대해 주택담보대출을 받거나 1억원을 초과하는 신용대출을 새로 받으면서 총 대출액이 2억원을 넘는 대출자가 있다면 DSR을 반드시 따져야 한다. 이 경우 개인별 DSR 40% 규제(비은행권은 50%)가 적용되기 때문이다. DSR은 개인이 갖고 있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을 연소득 대비로 따져 대출 한도를 정하는 방법이다. DSR이 40%면 연소득이 1억원일 때 1년간 갚아야 하는 모든 대출의 원리금이 총 4000만원을 넘을 수 없다는 뜻이다.
DSR 규제하에서 주택담보대출을 최대한 받으려면 신용대출은 줄이는 게 유리하다. 신용대출은 DSR을 계산할 때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에 거액의 신용대출을 갖고 있는 상태에서 주담대를 새로 받으려면 가능한 대출 한도가 확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신용대출까지 끌어 집 구매에 쓰는 ‘영끌’이 필수처럼 인식되면서 신용대출을 우선 최대한 받아놓고 주담대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DSR 규제 대상자라면 웬만한 고소득자가 아니고서야 주담대를 최대한 받는 것이 더 유리할 수 있다. 한 은행 관계자는 “만기가 길수록 DSR이 낮아지는 계산식의 특성상 대부분의 차주는 대출 한도를 늘리려면 주담대를 우선 받는 것이 DSR 계산에서 유리하다”고 했다.
전세대출을 새로 받는 사람은 당장 DSR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 금융당국의 실수요자 보호 방침에 따라 전세대출은 DSR 산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또 앞으로도 금리 상승이 당분간 급격하게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새로 대출받을 때는 고정금리 상품을 선택하거나 변동금리 중에서도 변동 주기가 긴 상품을 선택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빈난새 기자 binthe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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