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국산 위스키가 있지만, 대부분 위스키 원액을 수입해 한국 실정에 맞게 블랜딩한 제품이다. 따라서 한국산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제품은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에 희귀 위스키 가격이 세계적으로 약 500% 오르고, 20억원이 넘는 고가 위스키 등이 경매시장에서 이슈를 선점하면서 위스키를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다. 이제는 특이한 위스키가 입점하면 ‘오픈런’이 생기기도 하고, 아예 위스키 가격이 주식과 마찬가지로 매일 변동하는 모습도 보안다. 여기에 경기 김포의 김창수위스키, 그리고 남양주의 쓰리소사이어티스 등 수제 위스키 증류소도 등장했다.
그렇다면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한국은 왜 위스키 불모지에서 이제 막 도전하게 됐을까. 여기에는 뼈아픈 기억이 있다. 한국은 주류산업에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1984년 순국산 위스키 제조 개발에 들어갔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위스키 원액을 직접 발효·증류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위스키 특성상 무조건 숙성이라는 과정이 필요했다. 문제는 이 숙성 과정에서 위스키의 증발량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스코틀랜드의 춥고 축축한 기후에서는 1년에 1~2% 정도만 알코올이 증발하지만, 덥고 습하며 사계절이 확실한 한국에서는 오크통이 팽창·축소되면서 그 틈으로 계속 위스키가 증발하기 때문이다. 증발하는 양만 1년에 10% 이상. 매년 10%의 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셈이었다.
1987년 순국산 위스키가 출시됐지만, 수입 위스키와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았다. 한국산 제품은 대부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있던 시절이었으니, 당연히 소비자는 스카치 위스키를 선택했다. 그렇게 1990년대 초반 들어 순국산 위스키는 사라져갔다. 한국은 위스키 제조에 적합하지 않은 지역이라고 낙인까지 찍혀버렸다.
하지만 비슷한 기후에서 생산된 일본 위스키는 2000년대 들어 승승장구했다. 권위 있는 위스키 대회에서 계속 수상했고, 2020년에는 홍콩 경매에서 9억원에도 낙찰됐다.
아열대 기후인 대만의 카발란사는 오히려 위스키 증발이 많은 것은 빠른 숙성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스코틀랜드보다 빠른 숙성의 맛을 느끼라는 마케팅을 벌여 세계적 위스키 제조사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권위보다는 다양성을 추구하는 위스키 시장의 변화는 한국이 만들어 나가야 할 블루오션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위스키는 바로 만들어지는 맥주 및 희석식 소주와 달리 자금 회전율이 엄청 낮다. 평균적인 제품 한 병을 만드는 데 빨라야 3년, 고부가가치 제품은 10년은 물론 30년 이상도 필요하다. 초기 투자를 회수하기까지 10년 이상 걸릴 수 있는 산업인 것이다.
산토리 위스키는 아예 상장을 미루기도 했다. 10년이 걸려야 제대로 된 제품이 나오는데, 매년 실적을 발표하고 평가받는 상황이라면 좋은 위스키 제조에 전념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빨리빨리’ 문화를 추구하는 한국 기업의 성격상 위스키 비즈니스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는 것이다.
결국 롯데나 신세계가 위스키 제조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제조 기술을 가진 장인의 철학을 존중하며, 최소 10년은 실적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뜸 들임 없이 솥뚜껑을 여는 순간 밥이 설익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이런 인내와 뚝심, 철학을 소비자가 인정한다면 ‘프리미엄 코리안 위스키’라는 또 다른 주류 장르가 생겨날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을 시작하였다.
주류 인문학 및 트랜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최고위 과정, 세종사이버대학교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넷플릭스 백종원의 백스피릿에 공식자문역할을 맡았다.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술자리 인문학'을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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