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카드사들이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영토를 빠른 속도로 확대하고 있다. 가맹점 수수료율 인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등의 압박으로 카드사들이 수익성 확보를 위해 너나 할 것 없이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덤벼들면서다. 이에 오랜 기간 캐피탈사 고유 영역으로 여겨진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판도가 향후 어떻게 변화할지 이목이 쏠린다.
7일 금융감독원 공시에 따르면 6개 카드사(신한·삼성·KB국민·롯데·우리·하나)의 지난해 말 기준 자동차 할부금융 자산은 9조7664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8조6638억원) 대비 12.7%(1조1026억원) 늘어난 수치다. 이에 반해 전체 캐피탈사의 지난해 말 기준 자동차 할부 금융 자산은 전년(21조7093억원) 대비 3.75%(8151억원) 줄어든 20조8942억원으로 집계됐다.
국내 카드사들이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내 영향력을 키우면서 캐피탈사의 시장 점유율을 빼앗고 있는 것이다. 시장에 비교적 일찍 진입한 신한카드와 KB국민카드의 지난해 자동차 할부금융 자산 규모는 3조8919억원, 3조4569억원까지 확대됐다. 지난해 시장에 처음 도전장을 내민 하나카드 또한 할부금융 자산 규모 3657억원을 기록하면서 선방했다.
올해는 현대카드까지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발을 들이면서 판도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현대카드는 이달부터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구매 시 할부 결제를 지원한다. 지난해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이 경영 분리 수준을 밟으면서 현대카드도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진출하게 됐다. 이로써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은 비씨카드를 제외한 모든 전업 카드사의 격전지로 부상했다.
카드사들이 연달아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이유는 수익 다각화 필요해서다. 카드사들은 2007년부터 총 14차례에 걸쳐 카드 가맹점 수수료율을 인하하면서 신용판매 부문에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카드업계의 가맹점 수수료 부문 영업이익은 2013~2015년 5000억원에서 2016~2018년 245억원으로 급감했다. 2019~2020년에는 1317억원 순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수익성 확대를 견인해 온 카드론(장기카드대출)이 올해부터 DSR 규제 산정에 포함되면서 대출 시장에서의 경쟁력도 사라진 상태다. 카드사 입장에선 새로운 먹거리 창출이 불가피했단 의미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정부 규제에 따른 수익성 악화가 명확해짐에 따라 카드사들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사업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고 있고,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도 이 중 하나"라며 "자동차의 경우 가격대가 높고 최근 교체 시점이 짧아지고 있다. 카드사가 원하는 수익원 조건을 갖추고 있단 것"이라고 설명했다.
향후 카드사들이 공격적으로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 확대에 나서면서 캐피탈사 간 경쟁이 격화될 전망이다. 카드사들은 캐피탈사 대비 금리 경쟁력이 높다는 장점을 내세우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현대차 GV80(신차)을 할부(현금구매비율 30%, 대출기간 48개월)로 구매할 때 카드사들은 연 2.2~3.9%의 최저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이에 견줄 수 있는 최저금리를 적용 중인 캐피탈사는 업계 1위 현대캐피탈(연 2.7%), NH농협캐피탈(연 2.9%), 하나캐피탈(연 3.5%), 롯데캐피탈(연 3.7%) 정도다. 이외 캐피탈사들은 같은 조건에서 연 4% 넘는 최저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캐피탈사들은 각종 프로모션 시행으로 소비자 혜택을 강화함으로써 카드사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는 데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캐피탈은 지난해 카드사의 시장 진출에 대응하고자 현재 신차 할부금융 상품 금리를 0.7%포인트 인하한 바 있다. 최근엔 6개월 무이자 할부 프로모션을 현대차는 물론 기아차까지 확대 적용하기로 했다. 현대캐피탈은 고객의 안전 운전 점수에 따라 월 납입금을 할인해 주는 개인화 금융 프로모션도 도입한 상태다. 카드사에서는 아직 시도하지 않는 마케팅 전략을 공격적으로 구상하고 있는 셈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할부금융 시장에서 카드사와 캐피탈사 간 경쟁은 이제 불가피한 사안이 된 것이 사실"이라며 "카드사는 보다 높은 금리 경쟁력을 발판삼아 시장 점유율 확대에 나서고, 캐피탈사는 현 상태의 최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소비자 혜택을 강화하는 전략으로 기존 시장 영향력을 지키는 데 힘쓸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