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인》은 상상력의 ‘끝판왕’이라고 할 만한 소설이다. 주인공 나인은 외계인의 후손이지만 한국의 고등학생으로 현재와 미래라는 독특한 이름의 친구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며 지낸다. 나인은 외계인 중에서도 에너지가 강해 식물을 급속도로 자라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식물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정작 나인은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도, 특별한 능력을 지녔다는 사실도 모른 채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외계인에다 식물과 대화를 나눈다? 그야말로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바탕이 아닐 수 없다. 요즘 반려동물 못지않게 반려식물의 인기가 높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심리적 안정감을 찾기 위해 식물을 벗 삼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식물 호텔이나 식물 병원 같은 서비스도 등장했다. 반려식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나인》의 스토리가 실감 나면서 식물과 대화하는 일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뒤틀린 부모 아래서 공부 압박에 시달리는 권도현은 외계인 얘기를 즐겨하는 박원우와 친하게 지낸다. 하지만 돈과 권력을 다 가진 도현의 부모는 홀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가난한 원우와 만나지 말라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원우가 실종되었고 어느덧 2년이 지났다.
경찰에서는 17세 소년의 실종을 사고가 아니라 가출이라고 단정하고 원우 찾는 일을 중단해버린다. 원우 아버지는 아들을 찾기 위한 전단지를 사방에 붙이며 하루라도 빨리 반가운 소식이 오길 기다린다.
비를 맞으며 전단지 붙이는 아저씨를 본 나인은 측은한 마음으로 전단지 배포하는 일을 돕는다. 그즈음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과 식물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나인은 숲에서 원우가 도현을 만나러 왔다가 죽었고, 이 산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왜 죽었는지, 경찰이 무엇 때문에 수사를 중단했는지, 여러 의문점을 풀기 위해 나인이 발로 뛰지만 쉽게 풀리지 않는다.
나인은 절친한 현재와 미래에게 어렵사리 자신의 정체성과 원우의 사건을 전한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지만 2년이 지난 시점에 식물의 얘기를 누가 믿을 것이며, 왜 알고 있었으면서 이제 얘기하는지 등 경찰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 앞에서 절망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권도현이 자백하는 것이지만 접근한 첫날부터 나인은 도현에게 목덜미를 잡히고 만다. 어떻게 원우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원우 아버지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인가. 나인이 외계인이라는 사실과 식물과 대화한다는 행위를 사람들이 납득할까? 이 어려운 고리를 풀어나가는 과정이 흥미진진하면서 진지하게 펼쳐진다.
박원우가 외계인 얘기를 한 것은 실제로 나인의 이모를 만났기 때문이다.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나무를 되살려준 일이 고마워 원우가 외계인 얘기를 자주 했건만 어른들은 이상한 아이 취급하며 가까이하지 못하게 막아선다. 결국 ‘아이인 적이 없다는 듯 구는 어른, 단 한 번도 동화를 믿어본 적 없다고 착각하는 어른, 환상을 꿈꿔 본 적 없다고 믿는 우매한 어른’이 문제인 것이다.
마음껏 상상하고 꿈꾸어야 할 시기에 나의 생각이 너무 작고 지나치게 현실적인 건 아닌지 《나인》을 통해 점검해보라. 동화를 믿고, 환상을 꿈꾸는 어른이 많아지면 세상은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