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핵무기는 현실적 위협이다

입력 2022-04-10 17:13   수정 2022-04-11 00:13

강대한 러시아의 침공을 받은 우크라이나는 연일 무기를 지원해달라고 호소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반발을 두려워하는 미국과 유럽은 항공기는커녕 전차도 지원하기를 꺼린다. 러시아 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을 학살한 것이 드러나 세계적 공분이 일자, 그 틈을 타서 러시아산 전차들을 제공하기로 한 것이 전부다. 우크라이나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다.

우크라이나는 원래 소련의 공화국 가운데 하나였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되자 우크라이나도 독립했다. 그때 우크라이나는 미국, 러시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은 핵무기를 가진 나라였다. 전략 핵탄두 1900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176기에다 전략 폭격기 44대를 보유했다. 냉전 시기에 서독과 동독 사이가 가장 위험한 지역이어서 소련 영토에서 독일에 가장 가까운 우크라이나에 그렇게 많은 핵무기가 배치됐다.

당시 미국은 러시아에 핵무기들을 넘기라고 우크라이나를 거세게 압박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있는 핵무기가 테러리스트들에게 유출되는 것을 걱정했다. 그리고 미국은 소련과 협상하던 전략무기감축조약(START·Strategic Arms Reduction Treaty)을 소련의 실질적 후계자인 러시아와 진행하고 싶어 했다. 자연히 미국은 갓 독립한 나라들에 분산된 소련 핵무기를 러시아로 집결시키려 애썼다.

러시아를 믿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는 끈질기게 저항했다. 그러나 힘에 부쳐 결국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기는 데 동의했다. 1994년에 미국, 러시아, 우크라이나, 영국 네 나라가 서명한 부다페스트 각서(Budapest Memorandum)에 따라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모두 러시아에 넘기고 나머지 세 나라는 우크라이나의 안전을 보장하고 경제 원조를 하기로 약속했다. 1996년 우크라이나는 마지막 핵무기를 러시아에 넘겼다. 이어 2009년 미국과 러시아는 부다페스트 각서에 나온 우크라이나의 안전 보장을 재확인했다.

2014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갑자기 침공해 크림반도를 점령했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은 부다페스트 각서의 약속대로 우크라이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그저 러시아에 대한 경제 제재를 선언하고서 끝냈다. 유럽은 석유와 천연가스를 주로 러시아에서 수입하는 터라 경제 제재가 제대로 될 수 없었다. 말은 경제 제재였지만, 러시아는 별다른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상황이 그렇게 돌아가자 크림반도 침공을 주도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국내에선 인기가 치솟고 해외에선 위상이 높아졌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가 가스와 석유의 공급을 줄일지 모른다고 걱정해서 푸틴의 비위를 맞췄다.

그런 경험에서 푸틴은 무슨 교훈을 얻었을까? 그런 뜻에서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필연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전황이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자 러시아는 전술 핵무기를 쓸 수도 있다고 협박한다. 겁을 먹은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가 폐허가 돼가는 것을 보고도 대응 수준을 높이지 못한다. 한때 중국보다 훨씬 많은 핵무기를 보유했던 우크라이나로선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압력에 굴복한 것이 얼마나 아쉬울까? 미국과 영국의 배신이 얼마나 원통할까?

요 며칠 사이에 북한이 드러내 놓고 핵무기로 우리를 위협했다. 문재인 정권 5년에 핵무기 개발을 마쳤으니 이제는 투자한 것을 남한으로부터 뽑아낼 때가 됐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이제 우리는 북한군이 우리 영토의 일부를 기습적으로 점령하고서 국군의 반공세를 핵무기의 위협으로 저지한다는 전략에 대비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그처럼 핵무기를 쓰기엔 작은 도발에 대응하기가 무척 어렵다. 북한 해커들에게 뚫리지 않은 시설이 없을 터이니, 북한이 사이버 전쟁에 나서면 우리 사회는 제대로 움직이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음산하게도,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준 교훈 가운데 하나는 핵무기가 실제로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방에 관한 얘기가 나오면 “그러면 전쟁하자는 거냐?”하고 고함치는 세력이 득세한 사회에선 그것보다 더 무서운 교훈이 없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인류가 발명한 무기 가운데 실제로 쓰이지 않은 무기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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