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전선에서 구할 수 있었던 그림 도구는 맥주, 담배, 치약, 비누 등 보급품 상자 바닥에서 뜯어낸 종이와 연필 한 자루가 전부였다. 편지를 부칠 때마다 한 장씩 동봉한 6·25 전쟁 스케치는 어느덧 60점을 넘었다. 모친은 아들의 스케치를 모아 1952년 샌프란시스코의 한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열었다.
병사의 집에서 잠자던 스케치와 그가 1952년 일본으로 재배치된 뒤 물감으로 다시 그린 수채화 등 6·25 전쟁을 다룬 작품 60여 점이 9일(현지시간) 미 비영리단체인 한국전쟁유업재단(유업재단)을 통해 70년 만에 빛을 보게 됐다.
로저 스트링햄(93·사진)의 작품은 백병전, 참호전, 폭격기, 추락한 전투기, 야간 순찰, 병사들의 이동 등 장면을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그는 6·25 전쟁 발발 후 미 육군에 징집돼 21보병사단 24연대 본부중대 소속으로 1951년 한국 땅을 처음 밟았다. 이듬해 3월 부대가 일본 센다이로 재배치되면서 한국을 떠났다.
전쟁을 겪고 미국으로 돌아간 그는 전공을 바꿔 물리화학을 공부해 상온핵융합의 전문가로 이름을 날렸다.
박주연 기자 grumpy_ca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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