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 10일 출범하는 윤석열 정부가 시장의 자극을 의식해 부동산 정책 속도를 낮출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와 내각 후보자들이 속도 조절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11일 인수위 전체 회의 모두발언에서 "부동산 가격 폭등과 세금 폭탄은 명백히 현 정부의 잘못"이라면서도 "그것을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당장 바로 잡기는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주택공급이 바로 늘어날 수 없다"며 "부동산 세금도 공시지가, 실거래가 반등률을 떨어뜨리지 않는 한 획기적으로 낮추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국민들께서는 새 정부 탓이라고 생각하실 것"이라며 "이전 정부가 물려준 현재의 국정 상황이 어떤 상태인지 냉철하게 판단하고 국민들께 정확히 말씀드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설상가상으로 지금 국회 다수당(민주당)이 하는 모습을 보면 새 정부의 발목을 잡는 것을 넘어 아예 출발도 못 하게 발목을 부러뜨리려고 벼르고 있다"며 "앞으로 최소 2년 동안 지속될 여소야대 국회 환경은 새 정부의 정책 수단을 크게 제약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안 위원장의 발언은 문재인 정부에서 다양한 부동산 규제를 내놓으며 시장을 왜곡했고, 이를 급격하게 풀다가는 시장을 과열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대선 이후 서울 강남과 1기 신도시에서 재건축 단지 위주로 신고가가 발생하는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대선 직후 거래된 서울 아파트 가운데 30%는 신고가를 경신했고, 가장 많이 뛴 아파트는 직전 최고가 대비 16억원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아파트값 변동률도 지난주 0.00%를 기록하며 10주 동안 이어온 하락세를 끊고 보합으로 전환했다.
이날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처음 출근한 원희룡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획위원장도 속도조절론에 힘을 보탰다. 원 후보자는 경기도 과천 과천정부청사에 출근하며 "집값을 단번에 잡거나 정부의 조치로 시장을 제압한다는 오만하고 비현실적인 접근을 하지 않겠다"며 "시장 이치와 전문가 의견을 수용해 부동산 정책을 신중하게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양적으로 폭탄(공급)을 주거나 시장에 이상과열을 부추기는 지나친 규제 완화·공급은 윤 정부 청사진에 없다"며 "시장에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매우 신중하게, 관리·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정교하게 움직이겠다"고 설명했다. 또 "재건축, 재개발 규제 완화 폭탄으로 인해 개발이익, 투기 이익을 누릴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라고 강조했다.
시장에서 규제 완화 기대감이 높아지며 과열 조짐을 보이자 안 위원장과 원 후보자가 동시에 속도 조절을 예고하며 사전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더해 규제 완화 기대감만으로 집값이 오르는 상황에 대한 책임도 정책으로 시장을 왜곡한 현 정부의 탓으로 못 박은 셈이다.
윤 당선인 측에서는 연일 속도조절론을 내세우며 시장 안정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전일 기자 간담회를 열고 "인위적으로 시장을 누르면 밑에서 부작용이 끓고 결국 폭발한다"며 규제 완화를 약속하면서도 "다만 부동산 시장 정상화 정책을 너무 급속하게 가면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런 부분을 유의해가면서 단계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역시 "재건축이 빠른 속도로 되면 그 자체가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된다"며 "시장이 항상 완전한 것은 아니기에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을 항상 염두에 두고 조화로운 상태로 신중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속도조절론에 힘을 보탰다. 인수위도 불필요한 시장 자극을 우려해 부동산 TF와 국토부-서울시 도심주택공급 시행 TF의 회의 내용 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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