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리튬 가공업체와 2019년부터 장기 공급계약을 맺어온 국내 배터리 소재업체 A사는 올초부터 1개월 단위의 스폿(단기성)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작년만 해도 대규모 장기 계약을 맺으면 구입량에 따라 할인율을 적용받았지만 올 들어서는 리튬 공급 부족으로 인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리튬 구매를 늘리고 있다. A사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계약을 스폿으로 전환하면서 계속 가격을 높이고 있다”며 “당장 원재료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어서 가격 협상을 할 여유도 없이 속속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2017년 4차 산업혁명에 필수적인 핵심 5대 광물로 선정한 리튬, 니켈, 코발트, 망간, 텅스텐 공급망은 모두 중국이 장악하고 있다. 실제로 뤄양몰리브덴 등 중국 기업들은 2012년부터 100억달러(약 12조원) 이상을 투자해 콩고 코발트광산을 싹쓸이했다. 업체 관계자는 “리튬과 코발트 가공업은 노동집약적이며 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다량의 오염물질이 발생할 수 있다”며 “원재료를 대량 공급할 수 있는 국가는 중국이 유일하다”고 했다.
특히 양극재의 핵심 원료인 리튬의 국제가격은 미국 달러가 아니라 중국 화폐단위인 ‘위안’으로 책정된다. 세계 리튬 매장량의 60%가 남미의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염호(소금호수) 등 ‘리튬 삼각지’에 몰려 있지만 수산화리튬, 탄산리튬 등 2차전지에 쓰이는 리튬 화합물 1위 생산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 광물업체들이 일찍부터 남미와 호주에서 리튬을 대거 들여온 뒤 1차 가공을 거쳐 화합물을 생산하고 있다. 리튬 매장량에선 5~6%에 불과한 중국이 가격 측면에서는 10배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세계 리튬 공급망을 뒤흔들 수 있는 이유다.
국내 기업들은 광물값 폭등에 대비해 연구개발(R&D) 투자도 대폭 확대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이노베이션 등 배터리 ‘빅3’와 에코프로비엠 포스코케미칼 등 소재 양강업체의 지난해 연구개발비는 1조9531억원으로, 전년(1조1362억원) 대비 71.9% 급증했다. 직전연도 연구개발비 증가율(17.2%)에 비해 네 배가량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광물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원가를 절감하면서 어떻게 좋은 성능을 내느냐가 제품 경쟁력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이 중국 의존도를 낮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강내영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공급망 안정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밸류체인 ‘거점’을 이동시킬 필요가 있다”며 “대만,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중국을 대체할 국가를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정민/김익환/강경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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