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만 해도 국내 콘텐츠 시장에서 카카오 그룹의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웹툰·웹소설 플랫폼 카카오페이지의 전신인 포도트리를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카카오가 그해 음원 플랫폼 '멜론'을 운영하던 로엔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하며 문화 사업에 본격 진출했다.
이후 빠르게 영역을 확장하며 매출이 급증했다. 2016년 기준 포도트리와 로엔엔터테인먼트의 매출은 각각 640억원, 4506억원이었다. 그런데 지난해 출범한 합병 법인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이하 카카오엔터)의 매출은 1조2468억원에 달했다. 5년 만에 2.4배 넘게 늘어나며 콘텐츠 업계 '넘버 2' 자리에 오른 것이다. 1위인 CJ ENM(매출 3조5524억원)에 비해선 아직 규모가 작지만, 성장세가 매우 가파르다. CJ ENM이 1995년 이후 30여년 동안 이뤄낸 성과를 6년 만에 바짝 추격하고 있다.
빠른 성장의 가장 큰 비결은 막강한 자본력이다. 카카오엔터는 이를 기반으로 지금까지 총 47개에 달하는 회사를 인수·합병(M&A)했다. '영화사 집', '영화사 월광', 글라인, 사나이픽쳐스, 글앤그림미디어 등 국내 주요 영화·드라마 제작사가 포함돼 있다. BH엔터테인먼트, 매니지먼트 숲, 안테나 등 연예 기획사와 스타쉽, 크래커 등 음악 레이블사도 카카오엔터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잇딴 M&A로 주요 지식재산권(IP)과 인재도 카카오엔터로 모이고 있다. 영화사 집은 이유진 대표가 2005년 설립한 제작사로 '그놈 목소리' '국가부도의 날' '검은사제들' 등을 만든 곳이다. 최근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연출을 맡고, 송강호 강동원 배두나 아이유 등이 출연하는 '브로커'를 제작하고 있다. '낭만닥터 김사부' '제빵왕 김탁구' 등을 쓴 강은경 작가가 2015년 설립한 글라인엔 14명의 유명 크리에이터들이 속해 있다. '스토브리그' 등의 정동윤 감독, '부부의 세계' 주현 작가 등이 대표적이다. 영화사 월광엔 '범죄와의 전쟁' '공작' 등을 연출한 윤종빈 감독 등이 소속돼 있다.
계열사간 시너지가 극대화 되며 드라마·영화 시장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각 자회사들이 만든 SBS '사내맞선', tvN '군검사 도베르만', JTBC '기상청 사람들' 등이 올 상반기 잇달아 흥행에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슈퍼 IP도 탄생했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에서도 방영된 '사내맞선'은 14일 기준 넷플릭스 글로벌 순위 4위에 올랐다. 카카오페이지의 동명 웹툰·웹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 작품은 카카엔터가 기획하고, 자회사 크로스픽쳐스가 제작을 맡았다.
계열사 시너지는 K팝 열풍을 이끌고 있는 SM엔터테인먼트까지 인수하면 더욱 막강해질 전망이다. SM엔터는 원래 CJ와 CJ ENM이 먼저 인수를 추진했으나, 카카오엔터가 그 틈을 파고들어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SM엔터 인수가 최종 성사되면 다른 음악 레이블과의 협업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국내 연예 기획사 시장에선 하이브에 이어 2위 사업자로 등극하게 된다.
카카오엔터는 카카오TV를 통해 국내 최초의 주식 예능 '개미는 오늘도 뚠뚠', 카카오톡으로 진행되는 토크쇼 '톡이나 할까?' 등을 방영했다. 올 들어선 시청자들이 프로그램에 실시간으로 참여하고 소통하는 '플레이유' '생존남녀:갈라진 세상'을 선보이고 있다. 지금까지 카카오TV에서 공개된 오리지널 콘텐츠는 80여 편으로 누적 조회수는 15억5000만 뷰에 달한다. 이용자 수도 크게 늘었다. 지난해엔 매달 평균 340만명 수준이었는데, 최근 6개월 동안엔 700만명으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카카오엔터는 콘텐츠 제작에 연차나 경력도 따지지 않는다. 2020년 방영된 '찐경규'는 권해봄 PD가 처음으로 메인 연출을 맡아 제작됐다. 보다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드라마와 영화를 기획·개발할 수 있는 내부 전담팀도 본사에 따로 만들었다. 80여명의 주요 크리에이터들이 활동하며 산하 제작사들과 다수의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황정민·하정우가 출연하는 '수리남',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종이의 집'의 한국 버전 '종이의 집:공동경제구역' 등 연내 공개될 넷플릭스의 대작들도 카카오엔터의 자회사와 크리에이터들이 만든다. 장세정 카카오엔터 영상콘텐츠본부장은 "앞으로도 과감한 시도와 적극적인 투자를 이어나갈 것"이라며 "특히 다양한 협업으로 해외 시장 진출을 위한 슈퍼 IP 기획·제작에 주력해 글로벌 스튜디오로 자리매김 하겠다"고 말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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