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괴롭힘 가해자에 대한 징계가 약하다고 불만을 표시한 피해자를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시킨 인사명령이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조직 변경을 이유로 한 전보라고 하더라도, 해당 전보가 정당한지는 회사가 입증해야 한다는 판단도 함께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1부는 지난 8일 지방자치단체 출연 법인A가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부당인사명령 구제 재심판정취소 청구의 소에서 A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에 대한 회사의 조치가 미흡하다고 느낀 B는 A법인 원장에게 "징계가 장기간 이뤄지지 않았고 수위도 견책에 머물렀으며, 직장 내 괴롭힘 피해에 대한 구제나 보호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취지로 장문의 문자메시지를 보내 이의제기를 했다.
하지만 이의제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되레 2020년 3월 실시된 조직변경 과정에서 자신이 속한 팀이 확대 개편되고 일부 조직이 신설됐음에도 불구하고, 팀장에서 팀원으로 보직변경 인사명령을 받게 됐다. 속해있던 팀은 확대개편되면서 명칭이 변경돼 사라지게 됐다.
이에 B는 자신이 부당인사명령을 받았다며 A법인의 원장을 직접 찾아갔지만 원장은 "팀이 없어진 것은 B의 무책임한 행동 탓"이라며 되레 B를 탓했다. 이에 B는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을 했고 노동위는 B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이에 A법인이 중노위의 판정을 취소해 달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A법인은 "직장내 괴롭힘과 관련 없는 정기 인사시기에 맞춘 조직개편 과정에서 이뤄진 인사 조치"라며 "인사명령 자체가 강등이라고도 볼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B측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관련 주무부처의 요구로 사업을 변경하면서 A법인이 일부 조직을 신설했어야 할 필요성은 있다"면서도 "조직변경으로 팀의 숫자가 증가해 오히려 팀장 자리가 증가했는데, 기존 팀장이었던 B만 팀원으로 변경할 특별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조직변경 이후에도 팀장이나 실장 직위를 유지한 사람이 18명이었고, 5명이 새로운 팀장 또는 실장이 됐지만 오직 A만 팀원으로 보직이 변경된 점이 밝혀졌다.
법원은 이어 "B가 A법인의 원장에게 이의를 제기한 것에 대한 감정적 조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실제로 B에 대한 원장의 발언을 보면 상당한 불쾌감을 엿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A법인은 "팀원으로 직책이 변경됐지만 강등이 된 것은 아니므로 불이익이 없다"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팀장에서 팀원으로 변경되면 60만원의 직책급 업무추진비를 받지 못하고 팀원에게 지시를 내릴 수 없으며, 지긍심이나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게 된다"며 사실상 강등에 가깝다고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인사명령은 부당전보에 해당하며, 중노위의 판정은 적법하다"고 판단해 B측의 손을 들어줬다.
전보나 인사발령이 시기나 내부 사정 상 불가피한 조치였어도 상황과 맞물려 오해를 살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기업들이 근로자 사이에 갈등이 있는 경우 둘을 분리시키는 조치를 취하는데, 이 과정에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직원의 자리를 함부로 옮기게 되면 문제가 확대될 수 있다.
반대로 가해자에 대해서도 피해자의 강력한 항의를 반영해 과도한 징계 조치를 취하면 나중에 부당징계 논란이 불거져 난감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
한 노사관계 전문가는 "부당전보 등이 문제가 되면 회사는 대부분 정당한 인사조치였다거나 조직 쇄신 과정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전보가 실시되면 전보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는 회사가 입증을 해야 한다"며 "이 과정에서 직장 내 괴롭힘이나 성희롱의 피해자임을 주장했던 직원들을 함부로 전보시키거나 자리를 이동시킬 경우, 근로기준법 등 관련 법에 근거해 회사가 추가로 책임을 지게될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팀장에서 팀원으로 강등되거나 직책 변경으로 급여나 업무추진비 등이 감액되는 등 눈에 띄는 경우라면 더욱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출퇴근 거리가 지나치게 멀어지는 등 생활상 불이익이 예상되는 경우에는 문제가 될 소지가 클 수 있으니 인사 시즌을 맞은 인담자들은 특히 주의를 요한다"고 강조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