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학생 곽지호 씨(26·여)는 최근 엄마와 맛집을 다닌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유행한 약과, 들기름 막국수 등을 먹으러 다니는 데 50대인 엄마와 취향이 일치한다. 쑥이나 흑임자, 미숫가루와 같은 전통 식재료로 만든 케이크나 음료도 함께 즐긴다. 곽 씨는 “요즘 유행하는 맛집들이 나와 엄마 모두를 ‘취저(취향 저격)’했다”며 “예전엔 취향이 서로 달라 외식을 할 때 갈등이 있었는데 요즘은 좋아하는 음식이 일치하는 경우가 많아 함께 맛집을 다니는 게 즐겁다”고 말했다.
최근 유통가를 강타한 ‘할매니얼’(할머니 세대 취향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 열풍이 MZ세대(밀레니얼+Z세대)와 기성세대 모두에게서 인기를 얻고 있다. MZ세대에게는 이색적인 맛으로, 기성세대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맛으로 통하는 것이다. 레트로 열풍이 먹거리에도 확산되며 나타난 현상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GRS가 운영하는 롯데리아는 할매 입맛을 겨냥한 신제품 4종류를 내놓았다. 전통 간식인 꽈배기를 재해석한 뉴트로 제품이다. 페이스트리 생지를 튀겨 만든 ‘페스츄리 꽈배기 플레인’, 슈가 시즈닝을 뿌린 ‘페스츄리 꽈배기 시나몬’ 등 전통 간식인 꽈배기와 미숫가루 라떼 등이다.
홈플러스는 지난달 말 단독 상품으로 ‘설빙 인절미순희’ 막걸리를 선보였는데, 이 제품은 젊은 세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으며 출시 2주만에 2만병이 팔렸다. 홈플러스 측은 이 기간 판매된 막걸리 상품 중 매출액과 판매량에서 각각 1위를 차지했다고 소개했다.
앞서 스타벅스는 올해 첫 신메뉴로 흑임자 크림 케이크를 선보였다. 이 제품은 인스타그램에서 인증샷 열풍이 불면서 출시 보름 만에 13만개 이상 팔려 나갔다. SPC그룹 던킨은 흑임자 반죽으로 만든 꽈배기 도넛을 출시했다. 인기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를 모델로 내세워 할매니얼 제품임을 강조했다.
예전엔 어르신들이 즐겨 찾았던 곡물 식품도 MZ세대 사이에서 잘 팔리는 분위기다. 롯데마트에선 지난해 흑임자와 귀리, 병아리콩을 함유한 식품 판매량이 전년 대비 각각 38.5%, 42.4%, 91.4% 늘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1포씩 간편하게 섭취할 수 있는 건강즙, 분말 상품 매출도 같은 기간 22.3% 늘었다.
이처럼 할매니얼 입맛이 인기를 끄는 것은 전통적인 식재료가 젊은층에게 ‘이색적이면서도 건강한 식품’이란 인식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복고 열풍을 타면서 인스타그램 등 SNS를 통해 사진이 게시되고 재확산되면서 관련 식품들이 빠르게 홍보되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기성세대에게서도 호응도가 높은데 익숙하면서도 추억을 자극하는 맛이라는 인식이 많다.
최근 MZ세대 사이에서 가장 핫한 디저트 중 하나로 꼽히는 ‘약과’도 할매니얼 열풍의 대표적인 사례다. 의정부 ‘장인한과’에서 파는 약과는 많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원하면서 아이돌 콘서트 티켓보다 구하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기 어렵다. ‘약겟팅(약과 티켓팅)’이라는 용어도 만들어낼 정도다. 한 팩에 5000원짜리 약과가 온라인 중고마켓 등에서 4~5배 웃돈이 붙어 2만~3만원대에 팔릴 정도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까지 마라탕이나 매운 라면 등 자극적인 맛이 유행했는데 이에 대한 반작용 성격에서 심심한 맛의 전통 디저트가 뜨는 것으로 보고 있다"며 "당분간 관련 상품들 출시가 잦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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