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이야기]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통하지 않으니…애민군주 세종, 독창성·탁월함 갖춘 한글 만들다

입력 2022-04-18 10:00   수정 2022-04-22 13:20

한글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최근에 탄생한 글자다. 동시에 인류의 지적 성장, 향상된 사고능력, 과학의 발전, 진보된 사상(인간주의)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특히 개인이 목적의식을 가지고 단기간에 창작한 글자란 점에서 주목받는다. ‘표음문자’여서 학습하기 쉽고 사용이 편리하다. 논리적인 음운체계 덕분에 사용자가 수리적 사고에 익숙해질 수 있다. 그 때문에 많은 학자가 한글의 우수성을 인정했고, 구조와 제정 방식에 관심이 많다.

필자는 역사학자로서 한글을 창조한 목적이 궁금하다. 세종은 세상을 변혁시킬 능력을 소유한 최고의 권력자였다. 국가경영자인 동시에 뛰어난 학자였다. 그렇다면 한글 창제에 그의 사상과 구현 방식(논리)이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
홍익인간 사상과 ‘3의 논리’
이는 집현전 학자들과 함께 제정하는 과정에서도 표현됐다. 1446년 반포한 훈민정음 해례에는 목적을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않으니’라고 했다. 당시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을 표기하던 이두는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사정을 ‘어엿비’ 여긴 ‘어린 백성(愚民)’은 그리스나 로마의 특수한 시민이나 절대왕정이 무너지고 등장한 신사(부르주아지)가 아니었다.

세종의 정책 근간은 백성의 생활 편의와 풍족함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농사직설》을 편찬하고 측우기를 만들어 농사에 도움을 준 점, 조세를 감면해 ‘공평화’를 도모한 점에서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의창, 혜민서, 활인서 등을 설치해 백성의 굶주림과 질병을 치료했다. 당시 이미 공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주는 법까지 제정했다. 이런 세종은 모든 백성이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감정과 의사를 솔직하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기호(code)’를 가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세종이 혁신적인 인간주의와 실천을 추진하게 만든 힘과 사상은 무엇일까. 뛰어난 성리학자였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훈민정음 해례에도 ‘태극도설’ ‘음양오행설’ 등의 강한 연관성을 표현하고,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송학사상’의 영향도 거론한다. 하지만 세조 3년에 내린 소위 ‘구서령’에서 확인하듯 그 시대에는 《고조선비사》 《조대기(朝代記)》 등을 비롯해 역사 및 전통 신앙과 연관된 책이 많았다. 단군 의식이 강하고 다독가였던 세종이 가졌던 인본사상의 근저에는 ‘홍익인간’이 집약된 우리 사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표음문자 한글, 우수한 컴퓨터 언어
한글은 체계의 독창성과 탁월함 때문에 ‘옛글자설’ ‘파스타 문자설’, 심지어는 ‘창살설’ 등 모방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한글은 상징문자나 표의문자가 아니라 표음문자다. 말을 만드는 이빨(齒)·혀(舌)·목구멍(咽喉) 등 발성기관의 형태를 차용하고, 28개 기호를 초성음·중성음·종성음으로 구분한 뒤 각각 순서와 비율을 계산해 조합했다. 따라서 조합 능력이 향상된 현대문명에 가장 적합하고 우수한 컴퓨터 언어가 된 것이다.

그런데 조합에는 반드시 구성 ‘논리(logic)’와 ‘의미(meaning)’가 있다. 자음은 오음, 오성의 음상에서 확인되듯 오행사상과 연관이 깊다. 또한 필요성의 반영인지, 논리적인 필연인지 중성글자인 모음은 기본자 ‘· ㅡ ㅣ’를 기본으로 변형된다. 이는 천원(天圓)·지방(地方)·인위(人位)의 3재를 의미하고, 1·2·3이라는 수리를 반영한다. 상용화된 문자는 사람의 가치관, 사회 체제, 문화의 성격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명민한 세종은 ‘훈민정음’을 통해 신조선에 인간주의, 합일과 상생의 가치관을 이식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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