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역사학자로서 한글을 창조한 목적이 궁금하다. 세종은 세상을 변혁시킬 능력을 소유한 최고의 권력자였다. 국가경영자인 동시에 뛰어난 학자였다. 그렇다면 한글 창제에 그의 사상과 구현 방식(논리)이 반영된 것은 분명하다.
세종의 정책 근간은 백성의 생활 편의와 풍족함을 실현하는 일이었다. 《농사직설》을 편찬하고 측우기를 만들어 농사에 도움을 준 점, 조세를 감면해 ‘공평화’를 도모한 점에서 드러난다. 그뿐 아니라 의창, 혜민서, 활인서 등을 설치해 백성의 굶주림과 질병을 치료했다. 당시 이미 공노비에게 출산휴가를 주는 법까지 제정했다. 이런 세종은 모든 백성이 자기 존재를 과시하고, 감정과 의사를 솔직하고 쉽게 표현할 수 있는 ‘기호(code)’를 가져야 한다고 확신했다.
세종이 혁신적인 인간주의와 실천을 추진하게 만든 힘과 사상은 무엇일까. 뛰어난 성리학자였므로 그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훈민정음 해례에도 ‘태극도설’ ‘음양오행설’ 등의 강한 연관성을 표현하고,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송학사상’의 영향도 거론한다. 하지만 세조 3년에 내린 소위 ‘구서령’에서 확인하듯 그 시대에는 《고조선비사》 《조대기(朝代記)》 등을 비롯해 역사 및 전통 신앙과 연관된 책이 많았다. 단군 의식이 강하고 다독가였던 세종이 가졌던 인본사상의 근저에는 ‘홍익인간’이 집약된 우리 사상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조합에는 반드시 구성 ‘논리(logic)’와 ‘의미(meaning)’가 있다. 자음은 오음, 오성의 음상에서 확인되듯 오행사상과 연관이 깊다. 또한 필요성의 반영인지, 논리적인 필연인지 중성글자인 모음은 기본자 ‘· ㅡ ㅣ’를 기본으로 변형된다. 이는 천원(天圓)·지방(地方)·인위(人位)의 3재를 의미하고, 1·2·3이라는 수리를 반영한다. 상용화된 문자는 사람의 가치관, 사회 체제, 문화의 성격에 영향을 끼친다. 그렇다면 명민한 세종은 ‘훈민정음’을 통해 신조선에 인간주의, 합일과 상생의 가치관을 이식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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