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통화신용연구팀은 17일 "주요국의 확장적 거시경제정책 기조의 물가 영향력이 지속되는 가운데 풍부하게 공급된 유동성도 당분간 시차를 두고 물가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최근 국내 통화량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2월 시중 통화량은 광의통화(M2) 기준 3662조6229억원으로, 2020년 4월 처음으로 3000조원을 돌파한 후 매월 신기록을 다시 쓰고 있다.
오형석 통화정책국 통화신용연구팀 팀장은 "IMF가 주요 선진국의 재정지출 확대를 분석한 결과, 상당 기간에 걸쳐 물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며 "통화 증가율과 물가상승률은 비례하는 모습을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통화신용연구팀은 "우크라이나 사태 발생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이 큰 폭으로 상승한 가운데, 최근 중국 봉쇄 조치 등으로 공급 병목 현상이 더 장기화할 우려가 있다"며 "향후 국내 소비도 방역 조치 완화로 회복될 경우, 수요측 물가상승 압력도 증대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부는 오는 18일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따른 사회적 거리두기를 전면 해제한다. 밤 12시까지였던 다중이용시설 영업시간 제한과 10명까지 허용되던 사적 모임 인원 등과 같은 규제가 모두 없어진다. 또 5월 하순부터는 코로나19에 감염되더라도 일상생활을 하면서 모든 병·의원에서 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된다.
국내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년 동월 대비 4.1% 상승했다. 이같은 4%대 상승률은 2011년 12월(4.2%) 이후 10년 3개월 만이다. 물가가 예상보다 큰 폭으로 뛰면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최근 기준금리를 기존의 1.25%에서 1.50%로 인상했다.
추가로 물가가 더 오를 것으로 전망하는 경제주체들이 늘었다고 분석했다. 오형석 팀장은 "작년엔 향후 1년간 물가상승률이 2%를 초과할 것이라는 응답 비중은 42%였지만, 올해 3월 들어선 75%로 크게 높아졌다"며 "물가 상승률이 4%를 초과할 것으로 예상하는 응답 비중도 지난해 13%에서 올해 3월 27%로 크게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연구팀은 "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할 때,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안정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거시경제 안정에 긴요하다"고 주장했다. 과거 두 차례 석유파동에 대한 미국·영국·독일의 정책 대응 사례를 근거로 제시했다. 1970년대 1, 2차 석유파동이 발생했을 때 미국과 영국은 인플레이션이 유가 상승 등 비용 측 요인에 기인한다고 인식했다. 물가 상승에 대해 임금인상 억제, 임대료 상한 설정 등 주로 가격 통제정책으로 대응하고, 경기부양을 위해 통화·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운영했다.
반면 독일은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통화적 현상이라고 인식했다. 이에 통화정책은 긴축적으로, 재정정책은 확장적으로 운영하는 정책조합을 택했다. 연구팀은 "미국과 영국은 석유파동기가 끝난 1980년대 초반까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이 높은 수준을 이어가는 등 거시경제의 어려움이 계속됐다"며 "반면 독일에선 전반적으로 물가와 고용이 안정되는 등 비교적 양호한 경제 여건이 지속됐다"고 짚었다.
우리나라 경제구조를 반영한 모형으로 진행한 정책 모의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수요와 공급 측면에서 동시에 물가상승 충격이 발생하고,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을 전제했다. 기대인플레이션이 불안하고 물가 지속성이 높아질수록 물가상승 충격 발생 시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크게 증대됐다. 뿐만 아니라 경제주체들의 실질 구매력 저하로 경기둔화 압력이 발생하는 등 거시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파급효과도 확대됐다.
연구팀은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중앙은행이 통화정책 운영을 통해 적극 대응하지 않을 경우, 중장기적으로 거시경제 안정성이 크게 훼손됐다"며 "중앙은행이 물가안정을 도모하고 경제주체들의 물가 불안 심리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운용하는 것이 중기적 시계에서의 거시경제 안정화 도모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
고은빛 한경닷컴 기자 silverligh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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