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흥인동 충무아트센터에서 지난 1일 개막한 뮤지컬 ‘데스노트’ 중 라이토(홍광호·고은성 분)와 엘(김준수·김성철 분)이 함께 테니스 경기를 하며 부르는 듀엣곡 ‘놈의 마음속으로’다. 데스노트에 이름을 써 흉악범들을 살해하는 라이토와 그를 추적하는 엘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절정에 달하는 이 장면은 2015년 초연, 2017년 재연과 달랐다. 이전 공연들에선 빈 무대 위에 테니스 코트가 있다고 가정하고 배우들의 연기와 음향효과로 그 공백을 채웠지만 이번엔 초고화질 레이저 프로젝터가 테니스 코트의 흰색 선을 실감 나게 구현했다. 360도 돌아가는 코트 위에서 라이토와 엘은 서로 대립하는 감정을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공연기획사 오디컴퍼니는 5년 만에 다시 국내 무대에 올린 이 작품을 ‘논 레플리카(non-replica)’ 방식으로 제작했다. 초연과 재연 때는 일본 원작 뮤지컬을 배우와 언어만 바꾸고 그대로 올렸다면 이번엔 세트와 안무, 의상, 영상 등 무대 연출을 국내 정서에 맞게 자유롭게 각색하고 수정했다.
영상과 무대효과가 이전 공연에 비해 훨씬 더 화려해졌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線)’의 활용이 두드러진다. 무대 바닥과 벽면, 천장까지 총 3개 면이 3㎜ LED(발광다이오드) 전광판 1380장으로 덮여 있다. 그 위로 날카로운 선으로 디자인한 그래픽 영상이 음악과 장면의 변화에 따라 변주돼 등장한다. 사신 류크(강홍석·서경수 분)를 곁에 두고 마치 영웅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라이토 뒤로 강렬한 붉은빛 선 수백 개가 교차해 지나가는 장면은 객석을 압도한다. 렘(김선영·장은아 분)이 미사(케이·장민제 분)를 돕기 위해 자신이 모래가 되는 것을 감수하기로 결심하는 장면에선 수천 개의 크고 작은 촛불 형상이 배경을 뒤덮는다. 한편의 미디어아트 작품을 감상하는 듯했다. 오필영 디자인 감독은 “선과 획의 활용을 통해 감정을 증폭하고 공간감을 확장하려고 했다”며 “관객들의 착시를 자아내는 표현 기법으로 긴장감을 의도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극 초반부 미사가 부르는 노래 ‘사랑할 각오’는 초·재연 공연의 편곡에 비해 상대적으로 늘어지는 듯한 인상을 줬다. 서정성을 더 강조한 느낌이었지만 극 중 아이돌 가수가 콘서트에서 부르는 곡이라기엔 무대 장악력이 약했다. 공연은 오는 6월 26일까지.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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