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세무사시험 부실 출제 및 채점으로 고용노동부 감사까지 받았던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지난 16일 치러진 127회 소방기술사 시험에서 또 어이없는 관리 실수를 저질러 빈축을 사고 있다. 일부 고사장에서 2교시 문제지를 1교시 문제지 봉투에 넣어놓은 바람에, 감독관들이 1교시에 2교시 시험문제를 배부해 버린 것이다.
한국경제의 취재와 수험가에 따르면, 일부 시험 감독관들은 문제 배부 직후 지적을 받고 부랴부랴 2교시 문제지를 회수했지만, 문제를 미리 접한 수험생들은 1교시가 끝나고 미리 알게 된 2교시 문제를 공부했다는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수험생들은 "이번 기술사 시험은 형평성에 어긋나므로 취소해야 한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소방기술사는 건축물 화재위험을 막기 위한 제반시설의 검사 등 산업안전관리를 담당하는 전문인력이다. 매년 합격자 수가 50명이 안 될 정도로 희소한 자격이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유망 자격으로 분류되고 있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1차 시험은 매년 1000명이 넘는 수험생이 응시하지만 합격률은 3%가 채 안되는 난이도를 보인다. 시험 문제를 미리 접한 것은 합격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게 수험생들의 주장이다.
수험생들은 각종 수험사이트 게시판에서 "최대한 공정을 기해야 하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서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게 너무 어이 없다"고 성토하고 나섰다. 일부 수험생들은 "감독관 잘못"이라고 비난했지만, "봉투에 시험지를 넣는 것은 감독관이 아니라 공단이므로 공단의 실수"라는 의견도 제기된다.
일부 감독관들은 2교시 시험지를 본 수험생들이 공부를 하지 못하도록 감시하는 등 긴급하게 조처를 하기도 했지만 대다수의 수험장에서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인력공단의 시험 관리 부실이 잇따르면서 공단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공단은 지난해 9월 치러진 제58회 세무사 2차 시험에서도 세무공무원 경력자들이 면제 받는 2차 시험 과목에서 부실 출제와 부실 채점으로 과락률을 지나치게 높이는 바람에 고용부의 감사까지 받았다. 이로 인해 58회 시험에서 전체 공무원 경력자 합격자는 237명으로 전체 합격자 수 706명의 33.6%를 차지했다. 이 수치는 지난 5년의 평균 수치인 7.5%의 약 4.5배에 해당하며, 직전 연도 시험인 57회차와 비교하면 5배 이상의 수치다. 세무사 수험생들은 "국세청과 공단이 세무공무원 출신들에게 특혜를 제공했다"며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결국 고용부가 지난 4일 공단의 출제 및 채점 관리 과정에서 총체적 부실이 있었음을 인정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번 소방 기술사 사건이 고용부가 감독 결과를 발표한지 2주 만에 재발하면서 약속이 무색하게 된 상황이다. 한 국가자격시험 강사는 "인력공단의 시험관리 능력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 사건"이라며 "개선의 능력이 있는지조차 의심스럽다"라고 비판했다.
곽용희 기자 ky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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