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에 번역 출간된 구병모 작가의 장편소설 《파과》에 대해 뉴욕타임스가 내린 평가다. 구 작가가 2013년 처음 펴낸 이 소설은 지난달 미국에서 《칼을 든 노파(The Old Woman with the Knife)》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뒤 현지 언론으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 문학의 해외 진출이 활발한 가운데 또 하나의 성공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소설은 65세 여성 킬러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15세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처음 사람을 죽인 뒤 40년 넘게 살인 청부업을 해온 냉혹한 인물이다. 나이가 들면서 몸도 기억도 예전 같지 않은 주인공. 업계에서 퇴물 취급을 받고, 은퇴를 고민한다. 삶의 희로애락을 외면하고 살아온 주인공의 눈에 타인의 고통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연민의 마음이 싹튼다.
소설은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코믹함을 놓지 않는다. 뉴욕타임스가 기생충이나 오징어게임처럼 “만화 같은 액션과 오싹한 장면을 버무려 더 넓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평한 이유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한국의 북적거리는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국경을 넘어 공감을 끌어내는 책”이라며 “사회에서 무관심을 받는 노인들, 그리고 살아있어도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을 잘 그려내고 있다”고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나이듦이라는 인생의 도전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탐구하는 소설”이라며 10권의 추천 도서 중 하나로 꼽았다.
해외 유명 문학상을 받지 않은 한국 소설이 이렇게 해외 언론을 통해 집중 조명을 받는 일은 흔치 않다. 《파과》의 한국어 판권을 가진 위즈덤하우스의 김소연 편집자는 “60대 여성 킬러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새로운 여성 서사를 보여준 것이 해외에서도 신선하게 받아들여진 것 같다”며 “11개국에 판권이 팔리는 등 여러 나라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파과》는 영어로 번역된 구 작가의 첫 소설이다. 올 하반기에는 독일어로도 번역돼 출간된다.
구 작가는 그동안 아가미를 가진 소년(《아가미》), 인간을 닮은 로봇(《한 스푼의 시간》) 등 환상적인 상상력을 통해 탄생시킨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파과》는 국내에서 뮤지컬로 제작 중이며, 《아가미》는 프랑스 회사와 합작으로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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