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진(43) SJ CLO 대표는 십 수 년간 브랜드 ODM, OEM 생산해 온 노하우를 밑바탕으로 2019년 3D 패션 디자인 콘텐츠 제작으로 피벗(Pivot)했다. 신 대표는 생산공장을 직접 운영하면서 불필요한 부분들의 소비를 줄이기 위해 3D 디자인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새로운 분야의 도전, 그리고 패션산업의 변화 앞에 서 있는 신수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소비자들이 가상공간에서 3D로 제작한 옷을 보고 구매로까지 이어지는 시스템은 패션업계에서도 늘 상상해 오던 일입니다. 그걸 시작하셨다고요.
“2019년에 제가 설립한 SJ CLO에서 운영하는 3D 비주얼 스튜디오에서 하고 있는 일입니다. 창업 전부터 한 10여 년 넘게 패션관련 일을 해오다 머릿속으로 구상만 하고 있었죠. 짧게 말씀드리면 저희 회사는 3D 패션 디자인 콘텐츠를 만드는 곳으로, 패션 디자인 분야에서 10년 이상 경력 있는 베테랑들이 모인 회사입니다. 어떤 분야든 패션과 접목해 표현해낼 수 있는 색다른 콘텐츠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3D 패션 콘텐츠는 최근 패션분야에서 관심이 높은데요. SJ CLO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몇 가지가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3D 패션 콘텐츠를 만드는 일입니다. 요즘 뜨는 메타버스 플랫폼과 같은 가상공간에서 브랜드를 보여주는 것이죠. 이를테면, 제페토(zepeto)에 브랜드가 입점해 신상품을 소개하고 싶은데 그걸 해줄 수 있는 국내기업이 현재로선 많지 않거든요. 있다 해도, 표현해 낼 수 있는 기술력을 가진 곳은 드물죠. 저희는 디지털 패션 콘텐츠 개발을 통해 브랜드가 가진 아이덴티티를 살려 가상공간에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회사인 셈이죠.”
패션 브랜드에서 매년 출시되는 신상품들을 3D로 제작해 가상공간에서 보여주는 역할이겠네요.
“그렇죠. 요즘 메타버스 마케팅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패션 브랜드에서의 니즈가 많아졌어요. SNS 등을 통해 홍보하고 고객과 소통하던 방식에서 가상공간으로 확장된 셈인데, 앞으로 브랜드들이 가야할 방향이라고 생각해요.”
제작 과정은 어떻습니까.
“실물을 만드는 것과 똑같은 과정을 컴퓨터로 옮긴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브랜드에서 제작한 패턴을 받으면 3D로 변환 작업을 거치게 됩니다. 내부에 브랜드 디자인팀, 2D 스타일 디자인팀, 테크니컬 디자인팀, 3D 모델러, 모션그래퍼 등을 통해 작업이 이뤄지게 됩니다.”
실제 의류를 3D로 변환하는 기간은 어느 정도 소요되나요.
“보통 아래·위 포함해 캐릭터 한 컷 당 일주일 정도 걸립니다. 현재로선 개척기간이에요. 브랜드에서 관심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모르는 곳들이 많기 때문에 문의가 많은 편이죠.”
그럼 이 팀만 구축하면 누구나 가상공간에 들어갈 콘텐츠를 만들 수 있겠네요.
“그렇진 않아요. 저희와 비슷하게 3D 콘텐츠를 제작하는 회사들이 있긴 하지만 저희와 다른 점은 패션 감각이나 지식이 있느냐 예요. 게임 캐릭터를 개발하던 팀이거나 개발에만 치우쳐 있으면 사실 3D 패션 콘텐츠를 만들기 어렵죠. 3D 기술도 당연히 알아야하지만 패션에 대한 이해도가 있어야하거든요.”
“패션과 3D 기술, 가상공간에 대한 이해도 높은 디자이너들이 무기···사업 초기부터 직원들 역량 강화 위해 교육비 투자”
SJ CLO만의 독보적인 기술이 있는 건가요.
“소프트웨어 개발은 아직 저희의 방향은 아닙니다. 현재에도 좋은 오픈 소스들이 많아 그걸 사용하고 있고요. 저희의 차별점 또는 강점이라면 요즘 주목받고 있는 메타버스 환경에 적용할 콘텐츠 그리고 준비된 디자이너들의 멀티 역량을 꼽을 수 있죠.”
구체적으로 어떤 경쟁력인가요.
“3D 패션 콘텐츠는 테크 또는 디자인 한 쪽으로만 치우치다보면 온전한 방향성을 잡고 갈 수 없어요. 이 사업을 구상할 무렵부터 사람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디자인팀을 꾸릴 때부터 직원들의 역량 강화를 위해 교육비를 지원하면서 3D 디자인을 배우게 했죠. 사실 큰 기업이야 직원들 교육비가 부담되지 않지만 저희 같은 스타트업은 대표의 큰 결심이 필요하거든요. 3D 디자인 분야의 지식이 있는 디자이너들이 저희의 경쟁력이자 차별점입니다.”
“패션 3D 콘텐츠는 실물과 이질감 없어야···지난해 SJ CLO에서 론칭한 가상 브랜드 ‘웨어앤히어’로 싱크로율 90%까지 접근”
브랜드에서 궁금해 할 점들 중 과연 실제와 얼마나 비슷할지, 일반인들이 가상공간에서 브랜드를 접했을 때 이질감은 없는지도 있을 것 같아요.
“충분히 그런 의구심이 들 수 있지만 실제 저희가 브랜드와 작업했던 걸 보시면 모델이 입은 것과 3D 캐릭터가 입은 컷을 구분하기 쉽지 않을 정도예요. 그리고 저희는 게임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실물과의 이질감이 없어야 한다는 게 가장 중요하죠. 핏은 물론 실제 소비자가 착용했을 때 불편함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실제 생산까지 염두해 두고 3D 데이터를 제작해야 합니다. 현재로선 싱크로율이 90%까지 왔다고 보고 있어요.”
3D 패션 콘텐츠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자체 가상 브랜드를 론칭했다고 들었어요.
“작년 가을에 컨템포러리 시티웨어 ‘웨어앤히어(WHERENHERE)’라는 가상 브랜드를 론칭했어요. 이 브랜드는 가상공간에서만 보여지는데, 론칭과 함께 제페토에 입점했어요. 어떻게 보면 본격적인 3D 패션 콘텐츠를 만들기 전 테스트용이었죠. 처음 계획은 3D로 한 작업데이터로 생산이 가능한지를 테스트해보기 위해 40가지 품목을 제작했는데 단 한 개도 오류가 없었어요. 성공이었죠.”
“3D 콘텐츠로 비용·시간·원부자재 낭비 줄일 수 있어···인스타그램·무신사·제페토를 결합한 공간 만들고파”
메타버스 등 가상공간에서의 니즈가 늘어나는 이유도 있겠지만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브랜드에서 3D 콘텐츠를 제작해야 할 이유가 있나요.
“제가 오랜 기간 패션분야의 생산과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생산으로 진행되기까지 소비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죠. 시간, 비용, 인력은 물론, 버려지는 원단 등으로 환경문제도 심각하거든요. 그래서 그동안 해오던 ODM, OEM 방식으로만 진행되는 단순 납품 형태의 패션업계의 고리를 탈피할 수 있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다 3D 패션 콘텐츠를 생각하게 됐죠. 버려지는 원단으로 생기는 환경문제나 비용, 시간을 줄일 수 있는 3D 패션 콘텐츠가 앞으로의 패션시장에서 꼭 필요한 키워드가 아닐까 해요.”
앞으로의 숙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속도죠. 현재의 기술들을 잘 활용해 얼마만큼 빨리 구현해낼 수 있느냐 예요. 그 역량은 저를 포함한 팀이 풀어야할 과제인 셈이죠.”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3D 비주얼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 중인데요.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와 무신사, 제페토를 결합한 플랫폼을 만드는 거예요. 무엇보다 3D 패션 버추얼 디자인 분야에 독보적인 회사로 성장하는 게 꿈입니다.”
khm@hankyung.com
[사진=김기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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